趙相衍 <한국세큐리트 대표 sangyeoncho@hanglas.co.kr >

오래 전 영국에서 주재원 생활을 할 때다. 당시는 해외여행이나 외국생활이 흔치 않았다. 지금은 집집마다 자동차가 있고,주말이면 교외로 나들이하는 게 자연스럽지만,그당시 런던 생활을 하던 내게 그들의 자동차 문화는 충격이었다.

복잡한 런던에서 운전을 하다 신호대기에 걸려 서 있을 때 주변을 돌아보면 반 이상이 여성운전자였는데 그 광경이 얼마나 신기했는지. 지금은 익숙한 일이지만 당시는 운전도 하나의 중요한 기능이어서 대부분의 자동차를 전문 기사가 운전하던 시기였으니 그럴 수밖에.

유럽에서도 영국은 교통질서에 관한 한 가장 모범적인 국가이다.

영국의 교통문화 중 가장 특징적인 것으로 '라운드어바우트'란 것이 있다. 우리가 로터리라 부르는 것이 그것이다. 영국 도시의 도로사정도 우리와 다를 것 없이 복잡하지만 전국 수천 개의 교차로마다 라운드어바우트가 있어 교통신호 없이 서로 양보해 가며 주행을 한다.

라운드어바우트에 진입하는 모든 자동차는 이미 진입해서 돌고 있는 차량에 반드시 양보한다는 준법 정신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크기가 몇 평 남짓한 초소형 라운드어바우트가 있는 것을 보곤 감탄했던 기억도 있다.

게다가 서로 양보를 하고 고맙다고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인사를 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아름답다. 그래서 가끔 유럽대륙으로 자동차 여행을 갔다가 영국으로 돌아오게 되면,운전 시 편안함을 느끼게 될 정도였다.

또 횡단보도 주변에는 차도에 지그재그로 차선을 그어 운전자들로 하여금 횡단보도가 있음을 쉽게 알려준다. 일단 보행자가 길을 건너려고 횡단보도에 첫 발을 디디기만 하면 양쪽에서 진입하는 모든 자동차가 자동적으로 선다고 해서 '마법의 횡단보도'라고도 하는데 얼마나 철저히 보행자를 우선으로 하는지를 알 수 있다.

가끔 복잡한 시내 교차로에서 자동차들이 엉켜서 꼼짝도 못하고 있는 광경을 볼 때가 있다. 대부분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무리하게 전진하거나 회전을 하느라 남의 길을 막는 차들이 원인이다. 이런 차들이 다른 운전자들의 야유를 받는 광경을 보는 것이 드문 일도 아니건만 볼 때마다 어찌 그리도 얄미운지. 어차피 건너봐야 뒤차 꽁무니에서 조금도 전진하지 못할 바에는 다른 차의 통행이라도 가능하도록 양보해 주는 마음가짐이 아쉽다.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도 고향 찾아 떠나는 사람들은 고속도로란 말이 무색하게 차로 넘쳐나는 길을 운전해 갈 일을 걱정하며 언제 떠나야 길이 덜 막힐 것인지 고민할 것이다. 부디 이번 추석에는 양보운전으로 한 건의 사고 소식도 없기를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