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10여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명절 대목경기가 좀체 살아나지 않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들은 거품을 뺀 실속형 선물세트를 집중적으로 내놓으면서 아직까지는 '선방'을 하고 있지만,그 여파로 그나마 남아있던 손님마저 빼앗긴 재래시장은 타격이 더 커졌다.

이맘때면 동대문,남대문시장으로 몰려들던 지방상인들의 차량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할인점도 매출은 그럭저럭 유지하고 있지만 1만원대 이하 선물세트가 주를 이뤄 '대박은 물 건너 갔다'는 분위기다.

그나마 백화점은 사정이 낫다.

롯데 현대 신세계 등 백화점들은 본격적으로 추석상품이 매장에 깔리기 시작한 지난 22~24일 매출이 작년 같은 기간(D-14~D-16일)보다 최고 100% 이상 늘어났다.

겉보기에는 '폭발적 호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속사정을 찬찬히 뜯어보면 그리 낙관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긴 연휴에 여행을 떠나거나 휴장을 염두에 둔 고객들이 선구매에 나선 결과로 분석되는 탓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추석이 가까워질수록 매출이 감소할 것"이라며 '착시현상'에 대한 경계감을 드러냈다.

○백화점,아직까진 괜찮은데…

"예약판매기간을 연장하고,실속 선물세트를 늘리되,전시용 고가 선물세트는 가격을 낮춰라." 지난 8월 초 주요 백화점 상품팀에는 올 추석선물세트 운영과 관련,이 같은 내용의 긴급 지침이 전달됐다.

예약판매를 작년보다 열흘 정도 앞당겨 기존 백화점 이용 고객들의 이탈을 막고,실속 선물세트 비중을 예년보다 20~30% 늘려 할인점 고객까지 흡수하는 비상대책을 지시한 것.또 판매와 관계없이 고급스런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마련했던 1000만원이 넘는 와인 등 '전시용' 고가 선물세트를 아예 없앴다.

이런 노력 덕분에 지난 1일부터 20일간 실시된 예약판매는 백화점별로 최고 85%까지 신장했고,지난 주말 본격 시작한 추석선물 판매도 작년보다 많게는 150% 늘어났다.

예약판매 기간을 작년의 두 배로 늘린데다 실속상품 위주 영업전략이 먹힌 것.하지만 각 백화점 영업팀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추석경기 실종을 우려해 미리 '처방전'을 내놓아 효과를 보고 있지만,아직 추석을 10여일 남겨둔 시점에서 '약발'이 지속될지는 여전히 미지수여서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긴 연휴에 휴가를 떠나는 고객이 지난 주말 몰리면서 매출이 급신장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마트(할인점) 추석선물 코너에는 중·저가 선물세트를 찾는 고객들이 몰리고 있다.

지난 주말 3일 동안 롯데마트 서울역점에는 3만원 이하의 저가형 화장품 세트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늘어난 640만원어치 팔려나갔다.

1만원 미만의 저가 선물세트도 작년보다 30%가량 더 팔렸다.

○재래시장,"추석대목 물건너 갔다"

동대문,남대문 등 대표적인 재래시장에선 추석경기가 온데간데없다.

중부 건어물 시장에서 건어물상을 운영하는 황이숙씨(43)는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올해는 작년에 비해 3분의 2도 안 팔린다"고 하소연했다.

동대문 의류 상가의 한 상인은 "지난해보다 절반 정도밖에 물건이 안 나간다"며 "원래 환절기에는 정장세트를 사거나 아예 '구찌'(여러 벌의 옷을 한꺼번에 한가게 안에서 사는 것)를 사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은 한 벌씩만 사간다"고 말했다.

되도록 무난한 것을 사서 여러 옷에 맞춰 입으려는 것 같다는 진단도 내놨다.

한수만 동대문시장 상인연합회 회장은 "의류 식품 등 가릴 것 없이 작년보다 전체 매출이 20∼30% 떨어졌다"고 말했다.

○여행관련 상품은 때아닌 '특수'

긴 연휴를 이용해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여행객이 늘면서 관련 상품 매출도 급신장하고 있다.

갤러리아 백화점에 따르면 이달 들어 팔려나간 여행용 가방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60% 정도 늘어났다.

선글라스 매출은 같은 기간 3배 가까이 증가했으며 수영복도 25% 정도 판매가 늘어났다.

지호영 갤러리아백화점 매입부 잡화팀장은 "구입 고객의 70% 정도가 10월 연휴를 이용해 해외 여행을 떠나는 고객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김동민·박신영 기자 gmkd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