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龍煥 < 금융감독위 감독정책2국장 >

금융 거래에는 거래 당사자 간에 이해관계가 달라 자신의 정보를 상대방에게 다 알려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계약이 이뤄지기 전에 서로의 사정을 충분히 알지 못하면 최선의 선택을 하지 못하게 된다. 예컨대 어떤 회사가 상장(上場)을 하는데,이 회사가 얼마만큼 건실한 회사인지 모르면 주식을 사려는 투자자는 값을 얼마로 쳐줘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기업가치가 높은 우량 주식인지,아니면 형편없는 주식인지 구분할 수 없으면 시장에 나와 있는 기업들의 평균적인 가치 이상으로 가격을 쳐주기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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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건전성을 유지하고 투자자가 불리한 선택을 하게 되는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필요한 조건들이 있다.

우선 정보를 가진 당사자로 하여금 정보를 공시(公示)토록 강제하고 이익상충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관계자에게는 일정한 의무를 지우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시장에 들어오는 기업의 자격 요건과 절차를 정해 놓고 여기에 합당한 기업만 상장을 허가할 수도 있다. 까먹은 자본이 없어야 한다거나 일정 기간 이익이 나야 하고 분쟁이 없으며 회사 살림을 기재한 재무제표에 틀림이 없어야 하는 등 각종 신규 상장 요건과 심사 절차들이 그런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우회상장은 여러 사정으로 인해 이러한 상장심사를 받지 않은 기업이 이미 상장돼 있는 기업을 합병하거나 포괄적 주식 교환 또는 영업양수를 통해 시장에 진입하는 방법이다. 법에 보장된 상장의 한 수단이고 여러 순기능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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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망한 기술을 갖고 있지만,지금 당장 이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들이 상장 심사에 시간을 들이지 않고 시장에 접근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이에 따라 그동안 금융감독당국은 상장회사가 자기보다 덩치가 큰 비상장법인과 합병하는 경우에만 신규 상장에 준하는 합병 요건을 따지고 다른 경우에는 별도의 심사 요건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그동안의 우회상장 사례를 보면 부실 기업간의 불건전 결합이 대부분(상장사 70%,비상장사 49%)이었고,우회상장 과정에서도 시장의 건전성을 해치고 투자자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비상장 기업의 실질 가치가 부풀려져 상장회사 주주 가치가 희석되거나,구조조정을 통한 기업 경쟁력 제고가 아니라 인수·합병 재료로 포장돼 머니 게임으로 변질되는 사례가 많았다. 또 내부자 거래나 시세 조종이 생겨나는 등 불공정 거래 여지가 커지게 되었다.

시장 건전성을 저해하고 투자자 피해를 초래하는,독(毒)이 되는 불건전 우회 상장을 방지하면서 기업과 투자자들에게 약(藥)이 되는 건전한 인수합병 및 원활한 구조조정을 적극 지원하는 일은 감독 당국의 몫이다. 금융감독당국은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우회상장 실태를 분석하고 6월에 코스닥 시장의 우회 상장에 대한 기준을 강화한 데 이어 8월부터는 유가증권시장에 대해서도 실태 점검을 벌여 투자자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개선을 서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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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당국이 마련한 우회상장 규제의 범위와 대상은 부실한 비공개 기업의 모든 편법적인 우회상장과 불공정 거래를 방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소 상장기업의 사업 다각화 등 상장기업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비공개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건전한 M&A 활동의 경우에는 우회상장에 특별한 제약이 없다.

또 재무 상태가 우량한 비공개 기업이 인수·합병 등을 통해 상장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경우에도 투자자에게 이를 공시한 후 우회상장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그동안 고평가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비상장 기업 가치평가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외부 평가를 복수로 의무화하고 외부 평가 제한 사유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어느 나라에서나 규제를 빠져 나가려는 쪽과 불건전 시장활동을 막기 위한 감독당국의 규제 간에 끊임없는 숨박꼭질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우회상장의 남용과 이에 따른 감독 규제는 선진화된 인수·합병 시장으로 가는 진통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감독당국의 규제는 새로운 환경변화와 시장 수요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규제의 시기와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