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 5년은 뉴욕 월가의 일 욕심 많은 전형적 'A형 인물'을 어떻게 바꿔놨을까.

월가에서 '잘 나가던' 채권 중개회사였던 캔터 피츠제럴드의 최고경영자(CEO) 하워드 루트닉(45).그는 2001년 9·11 테러 때 극적으로 목숨을 건지기 전까지는 경쟁심이 강하며 일 욕심이 많은 전형적인 '월가맨'이었다.

하지만 9·11테러로 그의 삶의 철학은 상당히 달라졌다.

루트닉은 9·11테러 5주년에 맞춰 캔터 피츠제럴드 맨해튼 새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당시의 참상을 회고했다.

그는 "9·11테러 당시 일터에 있던 사람들 중 생존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며 "캔터 피츠제럴드 뉴욕 본사 직원들 중 목숨을 건진 302명은 모두 그날 아침 현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당시 월드트레이드센터(WTC) 노스타워 건물 101층에서 105층까지 쓰고 있던 캔터 피츠제럴드 뉴욕 본사가 항공기테러 공격으로 무너져 내리던 시간에 그는 5살된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있었다.

당시 그는 사망한 직원들에 대한 급여 지급을 즉시 중단함으로써 공분을 샀지만 대신 매년 회사 이익의 25%를 유가족들에게 5년간 돌려주고 보건 비용을 10년간 전액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당시 회사 상황을 감안할 때 과연 이런 약속이 지켜지겠나 하는 회의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다"며 "그러나 2001년 10월 우리가 4000만달러를 일시불로 분배하자 그러한 의심은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캔터 피츠제럴드 구호 기금'은 루트닉의 여동생 에디가 운용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1억8000만달러를 유족들에게 나눠줬다.

그는 "9·11 이후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다"며 "예전에는 아침에 일어나면 뼈빠지게 일만 할 줄 알았지만 유가족 및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장 중요한 일은 행복 추구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강조했다.

멋있는 자동차와 옷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것들을 얻는 방법을 자문해주되 해변에서 즐기는 생활을 '열반의 경지'로 생각하는 고객에게는 거기에 맞는 자문을 해주는 '맞춤형'으로 투자 자문 방식도 바꾸었다고 덧붙였다.

9·11 당시 당장 회사 문을 닫으려고 생각했다는 그는 당일 저녁 생존 직원들이 만장일치로 회사 재건 및 유가족 지원 결의를 한 데 자극을 받아 마음을 바꾸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일을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지만 내 회사에서 일하다가 목숨을 잃은 직원들에게 책임을 느꼈다"며 "이것이 내 삶이니 만큼 극복해 나갈 것이나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아직도 고통"이라고 말했다.

신동열 기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