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100억원대의 돈을 빌린 뒤 미국으로 잠적한 악덕 채무자를 끈질지게 추적한 채권자가 미국 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이끌어낸 사실이 밝혀져 화제다.

5일(이하 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의 로펌인 '비전인터내셔널' 이세중 변호사에 따르면 오렌지카운티 지방법원은 최근 한국에 거주하는 S씨가 오렌지카운티에 사는 H씨를 상대로 제기한 원금반환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H씨에 대해 S씨에게서 빌린 원금 16억원(약 167만 달러)에다 2년전 한국 법원에서 승소판결을 받을 때까지의 이자를 연 18%씩 계산해 모두 30억원 가량을 갚도록 했다.

이번 판결은 미국 법원이 한국 법원의 판결 및 한국 검찰의 체포영장 발부 등 민.형사상 기록을 인정한 것이어서 유사한 사건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S씨는 곧 H씨의 미국내 재산에 대한 압류절차를 밟을 예정인 가운데 특히 채무자 H씨는 오렌지카운티에 자녀 등의 명의로 고가의 가옥 여러채를 소유하고 있고 최근에는 음식점을 매각하는 등 한국에서 빼돌린 돈으로 호화 생활을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S씨가 피해를 당한 것은 12년전인 지난 1994년.

당시 건설업을 하던 S씨는 투자금을 모집하던 H씨에게 16억원을 빌려줬지만 H씨는 S씨 이외에도 다른 투자자들의 돈을 모집한 뒤 한국내 재산을 처분하고 미국으로 이주했던 것.

당시 H씨로 인한 피해액만 1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S씨는 H씨를 사기죄 등으로 한국내 검찰에 고소, 체포영장을 발부토록 하는 한편 투자금 반환 소송을 제기해 2년 전 청주지법에서 승소판결을 받았다.

S씨는 또 H씨가 LA로 피신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LA지역에 수배 전단을 뿌리는가 하면 용역 업체에 의뢰하는 등 H씨 추적 작업을 계속했고 마침내 H씨의 소재를 알게되면서 은닉 재산도 상당수 파악했다는 것.

이세중 변호사는 "피해자가 한국에서 모든 법적 절차를 밟아 승소 판결을 받아낸 뒤 이를 근거로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함에 따라 다시 승소할 수 있었다"며 "유사한 피해자들의 경우에도 S씨의 경우처럼 우선 한국에서 민.형사 절차를 밟고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하는 순서를 따르는 게 유리하다"고 밝혔다.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장익상 특파원 isj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