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正來 < 부산교대 교수·교육학 >

정부는 '비전 2030'에 취학·입대 연령을 낮추기 위해 교육부와 교육혁신위원회가 제시한 학제 개편안을 포함시켰다.

골자는 현행 6-3-3-4 학제를 5-3-4-4 제, 6-4-2-4 제, 6-6-4 제 중 하나로 개편하는 것이다.

이번 학제 개편 추진은 저출산,고령화,지식기반사회로의 진입이라는 사회구조의 근본적인 변화에 따른 시의적절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학제 개편을 통해 저출산 문제는 초·중등교육 내실화로,고령화 문제는 평생교육기반의 확충으로,그리고 지식기반사회,무한 경쟁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는 교육제도의 유연성을 마련할 수 있는 호기(好機)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제개편안은 각기 장단점을 안고 있는 만큼 어느 안으로 결정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학제는 글로벌 사회에서 대한민국의 국가경쟁력을 제고하고,학습자 개인의 학력이 향상될 수 있는 개방된 체제여야 한다는 점이다.

우선 학제가 각종 이익집단이나 대선 전략과 같은 정략적 의도에서 결정돼서는 안 될 것이다.

5-3-4-4 제는 초등교육 관련집단의 저항이 예견된다.

또한 유치원 정규학제 편입 문제와 함께 6-6-4 제는 중등교육 통합에 따른 무상의무교육 연장이라는 재정부담이 이어진다.

'비전 2030'에 대한 가장 큰 우려가 재정부담 증가인데,학제개편도 재정부담을 크게 지우는 방법을 피해야 할 것이다.

사회제도는 사회 구성원의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하고,이를 위해 다양한 선택지(選擇肢)를 제공하는 유연성을 띠고 있을 때 순기능을 한다.

어떤 제도든지 유연성이 있어야 사회 구성원인 개인에게 이익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 유념해 학제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학제 개편 논의는 교육제도와 교육정책의 운영 면에서 유연성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고려대상인 학생과 학부모의 다양한 교육수요를 최대한 충족시킬 수 있는 교육과정 운영을 전제로 한 학제 개편은 동시에 교육공급자인 학교 당국의 선택 권한을 최대한 보장해 주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 사학의 학생 선발권과 자율권이 크게 위축된 점을 감안할 때,복선형 학제까지는 아니더라도 공립학교와는 별도로 초·중등 사립학교의 선택권한을 최대한 보장해 주는 학제가 마련돼야 한다.

예컨대 중등학교를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분리하거나 통합하는 권한을 사학의 자율에 맡기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영국의 경우가 그러하다.

아울러 새로 마련될 학제는 국가가 지원과 통제라는 수단을 통해 모든 것을 결정하는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해야 한다.

이른바 평준화 정책이나 3불(不)정책(본고사·기여입학제·고교등급제 금지)과 같은 국가독점이 존속하는 한,어떤 학제가 도입되어도 경쟁력과 교육력의 제고는 불가능한 것이다.

6-4-2-4 제는 고등학교 2년이 대입준비기간으로 전락한다는 항간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고 한다.

이 안은 영국의 6-5-(2)-3 제도와 흡사하다.

영국은 초등 6년,중등 5년,대입준비기간인 '6학년제(sixth form)' 2년,그리고 3년제 대학이라는 학제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영국의 학제를 논할 때 '6학년제'를 입시위주라고 비난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다.

'6학년제'는 중등학교에서 부설해 운영하기도 하며,독립된 기관(sixth form college)에서 운영하기도 한다.

대학의 경우도 3년제가 근간이지만,기초학년을 둔 4년제를 같이 운영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학제의 틀 안에서 국가개입이나 간섭이 없는 자율이다.

어느 경우이건 중요한 것은 학제라는 틀을 수단으로 국가가 모든 정책결정을 독점하지 말아야 한다는 데에 있다.

교육에서 학제는 국가에 비유하면 헌법상 규정된 국가조직과 유사하다.

만약 모든 권력기관과 조직을 정부가 독점하도록 헌법에 규정돼 있거나 실제로 독점하고 있다면,그 국가는 경쟁에 뒤처진 전제국가임에 틀림없다.

학제가 국가독점을 방지하고 글로벌 사회에서 국가경쟁력과 학습자 개인의 학력 제고를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틀이 돼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