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이 국제노동기구(ILO) 아시아태평양 총회에서 갑작스럽게 철수한 사태는 참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애써 국제행사를 유치해 놓고도 스스로 재를 뿌리는 꼴이 됐을 뿐 아니라 한국 노·정(勞·政) 관계가 얼마나 후진적인지 전 세계에 그대로 노출하는 결과를 초래했으니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한국노총 측은 이상수 노동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노사로드맵 협상진행 상황을 공개한데다 합의가 되지 않더라도 오는 7일께로 예정된 입법예고를 강행하겠다고 밝힌 것을 철수의 이유로 들고 있다.

물론 이 장관이 주요 쟁점에 대한 노동계의 협상 안(案)을 밝힌 것 등은 사려깊은 행동이라고 보기 힘든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노동계가 이로 인해 서운한 감정을 느낀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어디까지나 우리 내부 문제 때문에 국제행사까지 엉망으로 만드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특히 이번 총회는 지난해 10월 열릴 예정이었다가 노동계의 반대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올해로 연기됐던 것이고, 이용득 위원장이 한국노동계 수석 대표로 참석했던 만큼 더욱 그러하다.

우리 노동계가 얼마나 강성투쟁 일변도인지 만천하에 드러내 외자유치 등에 심대한 악영향만 끼칠 뿐이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번 사태로 인해 노사로드맵 협상 자체마저 크게 뒤흔들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 위원장이 "1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협상 참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힌 것은 여차하면 협상중단 선언을 하겠다는 위협(威脅)에 다름아니다.

만일 그런 일이 현실화된다면 노사로드맵 합의 처리에 결정적 타격이 초래되는 것은 물론 총파업 등이 재연되면서 취약한 경제에 또다시 큰 충격을 가할 것은 너무도 뻔한 이치다.

노사로드맵 처리에는 정말 시간적 여유가 없다.

IL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와의 약속을 감안할 때 올해 말까지는 입법을 완료해야 한다. 따라서 노동계가 로드맵 협상 자체를 거부하는 일은 결코 있어선 안된다. 노·사·정 간에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금지 문제나 복수노조의 교섭창구 단일화 문제 같은 주요 쟁점에 대해 아직도 견해차가 현격한 만큼 대화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하다.

노동계는 지금이라도 이성(理性)을 회복해야 한다.

정부 역시 노동계의 동참을 유도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