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월급받는 게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라는 걸 느끼게 됐습니다."

코오롱 구미공장에서 근무하다 2004년 파업 직후 대기발령을 받고 재택근무 중인 H씨.과거 노조 집행부에 소속돼 강경 투쟁의 선봉에 섰던 그는 "재택근무를 하며 회사 밖에서 돈벌이를 하려다 보니 회사에 소속된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1997년에 입사해 아무것도 모르고 조합활동을 시작했고 회사보다는 조합에 미쳐 있었다"며 "투쟁만이 고용을 보장할 수 있다는 과거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후회했다.

매년 파업찬반 투표를 벌이면 70∼80%가 찬성표를 던졌던 ㈜코오롱 구미공장의 조합원들은 2년 넘게 이어진 파업의 여파를 경험하며 이렇게 변하고 있었다.

결국 회사를 살려야 자신들의 일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조합원들은 특히 ㈜코오롱에 나일론의 원료인 카프로락탐을 공급하는 카프로가 18일째 파업을 벌이는 것을 지켜보며 과거 자신들의 파업이 협력업체에 얼마나 큰 피해를 입혔는지 알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코오롱 구미공장은 카프로의 파업으로 액체 대신 고체 카프로락탐을 공급받기 때문에 이를 재가공하는 데 일손을 추가 투입해야 하는 등 관계사의 파업에 따른 피해를 실감하고 있다.

H씨는 "그동안 노조가 우리 밥그릇 챙기기에만 열을 올리느라 협력업체에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사실은 인식하지 못했다"며 "파업이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구미공장 조합원들은 그러나 지난해 또 한번 실수를 반복했었다.

지난해 8월 노조위원장 선거에서 해고자를 당선시켰던 것.'해고자들의 강한 투쟁이 고용안정과 복지를 향상시킬 수 있다'는 오해에서였다.

하지만 부정선거 혐의가 인정돼 지난 7월 벌어진 재투표에서 조합원들은 해고자 복직에만 열을 올렸던 전임 집행부의 활동에 실망해 현 집행부에 90%가 넘는 찬성표를 던지게 됐다.

투쟁은 더 이상 노조활동의 본질이 아님을 깨달은 셈이다.

시민들과 고객사를 상대로 홍보활동에 나선 집행부에 박수갈채를 보내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중국 업체들에 밀려 경쟁력을 잃고 위기에 처한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는 고객사들과 시민들로부터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코오드생산팀에 근무하는 김창수 조합원은 "과거에는 코오롱 작업복만 입고 나가면 식당에서 무조건 외상을 해줬는데 이제는 '코오롱 아직도 파업하고 있냐''코오롱 공장 돌아가기는 하냐'는 말만 듣는다"며 "자존심도 상하고 위기감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중합팀에 근무하는 이동만 조합원은 "대부분 근속연수가 17∼18년인 조합원들은 1988년에 설립된 노조와 회사생활을 함께 하며 투쟁적인 조합에 적응해왔다"며 "내가 회사를 위해 무엇을 한다기 보다는 회사가 당연히 나를 위해 무언가 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조합원들이 회사를 살리기 위해 새로운 출발점에 선 셈'이라고 말했다.

구미=유창재 기자·부은영 인턴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