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구 < 논설위원 >

이용훈 대법원장이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 구속으로 이어진 법조비리 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대법관과 각급 법원장까지 배석시킨 것을 보면 사법부가 느끼는 신뢰 추락에 대한 위기감이 얼마나 큰 지 선명히 드러난다.

법질서 수호와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한 보루(堡壘)여야 할 사법부가 이런 지경에 빠진 것은 참으로 서글프다.

이번 뿐아니라 의정부 지법, 인천지법, 대전지법 등에서도 잇따라 비리사건이 터져나왔던 만큼 신뢰도 추락은 스스로 자초한 셈이다.

특히 특정 법조브로커가 떠맡은 사건의 성공률이 90%에 이른다는 보도마저 나와 타격이 더욱 크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거나 '큰 도둑이 작은 도둑을 심판한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그런 연유다.

하지만 사법부의 신뢰에 정말 금이 가게 하는 것은 전관예우라는 이해할 수 없는 관행이다.

비리 사건이야 판사 개개인의 문제로 돌릴 여지가 있지만 전관예우는 구조적 비리이자 집단이기주의로 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누가 사건을 맡느냐에 따라 판결의 내용이 달라지는 일이 상식처럼 통용된다면 사법 정의는 애초부터 기대난이다.

또 판사가 변호사로 전업할 경우 같은 대우를 향유하게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전형적인 '동업자 돕기'에 불과하다.

보다 큰 문제는 이런 집단이기주의가 비단 법조계에 한정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정부 각 부처에서 근무하던 공무원들이 산하기관 기관장 등 그럴듯한 자리를 꿰차는 소위 낙하산 인사는 법조계의 전관예우와 정확히 맥락을 같이 한다.

떠나는 공무원의 뒤를 봐주는 것은 자신의 미래 입지와도 연결되는 만큼 현직 공무원들은 열심히 자리를 알아보고 또 압력을 행사하면서 알토란 같은 자리들을 챙겨주곤 한다.

정치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요즘 문화부 차관의 경질과 산하 기관의 기관장 인선 문제를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빚어지고 있지만,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도 따지고 보면 내 식구 챙기기라는 뿌리깊은 집단이기주의 관행에서 비롯된 일에 다름아니다.

기관이나 조직의 효율성을 생각하기 보다는 내 사람 심기에만 열중하는 듯한 모습이니 국민들의 눈에 합리적이고 제대로 된 인사를 하고 있다고 비칠 리 만무하다.

나라를 이끌어나가는 지도층부터 이러하니 우리 사회에 집단이기주의가 횡행하는 것도 그리 이상할 게 없다.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풍조가 만연한 가운데 별다른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다.

대표적인 예가 귀족노조의 행태다.

국내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으면서도 툭하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일삼고 있으니 기막힌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회사야 멍이 들든 말든,협력업체 근로자들의 임금이 깎이든 말든 내 배만 부르면 그만이란다.

하기야 지도층들부터 도덕불감증에 걸려 있는 마당에 어찌 딱히 이들만 탓할 수야 있겠는가.

하지만 사회가 계속 이런 식으로 굴러간다면 나라의 미래가 참으로 암담하다.

공정한 룰이 뿌리내리고 상식과 도덕과 신뢰가 살아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자면 정치권과 공무원 등 사회지도층부터 비합리적 관행을 서둘러 벗어던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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