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道永 < 서울시립대 교수·도시사회학 >

명품(名品)이란 무엇일까? 아마도 우리나라 혹은 아시아권 몇 나라에서만 사용되는 명칭이기 쉬운 이 단어는 럭셔리(luxury)란 단어로는 다 표현되지 못하는 아우라를 담고 돌아다닌다.

교과서적으로 그 뜻을 짚어보자면,명품은 우선 품질이 뛰어난 상품일 것이다.

내구성(耐久性)이 뛰어나고 기능도 우수하며,특히 디자인이 뛰어나서 외양으로 보기에 고급스러운 것일 게다.

그렇게 뛰어난 것이라면 가격도 비싼 것이 당연하다.

가격이 비싸니까 그것을 구입해서 사용하는 사람의 숫자는 적을 것이 분명하다.

교과서적인 뜻풀이는 거기서 멈춘다.

이제부터 더해지는 것은 문화심리적 경향이다.

형체가 분명하지 않으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그 무엇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대중적 소비의 사회,대량 복제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오랫동안 명품은 생산과 소비가 사회적으로 철저히 통제되었었다.

왕권국가의 시대에는 아무나 옥비녀를 쓸 수 없고 아무나 챙이 넓은 고급 갓을 쓸 수 없었다.

마차나 가마도 마찬가지다.

옷의 색깔과 문양(文樣)에도 지위에 따른 규칙이 있어서,예컨대 보통 양반이 용의 무늬로 장식한 붉은색 두루마기를 지어입고 거리를 다니면 그대로 대역죄인으로 체포되어야 했다.

실은 그런 옷을 지어 입는다는 상상조차 할 수도 없었다.

단지 물건이 귀해서,또는 값이 비싸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런 물건을 소비한다는 것 자체가 지위와 권력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흔아홉간을 넘는 집을 지으면 대역죄인이 되는 것은 그런 이유이고,왕비의 헤어스타일이 멋져 보인다고 그것을 따라 할 수 없는 것이 그런 이유였다.

그러다가 세상이 변했다.

계급사회가 무너지고 시민주권의 시대,자본주의의 시대,대중소비의 사회가 됐다.

누구나 돈만 있으면 비싼 물건,귀한 물건,이전에 접근이 허용되지 않았던 지위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물건들을 사서 쓸 수 있다.

헨리 포드의 생산혁명으로 대변되는 대량생산,대량복제 시스템이 또 다른 배경을 만들어주었다.

비교적 질 좋은 물건들이 대량생산 덕분에 값이 싸져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전 시대의 한정된 물건,품질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접근이 통제(統制)돼 있던,지위의 상징이 되던 물건에 대한 접근의 유혹이 다른 한쪽에서 더욱 강하게 싹튼다.

당연한 인간의 심리다.

이제 귀한 제품은 대량생산이 아닌 수공예 제품이어야 한다.

고도의 기예를 갖춘 장인(匠人)의 숨결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왕권시대 지배층의 만족감을 맛보는 느낌이다.

특히 예전에 왕족만을 위해 한정된 양을 주문 생산하던 것이면 금상첨화다.

한국과 일본,중국에서 벌써 오래전부터 명품에 대한 열광적 선망풍조가 일고 있다.

진짜 명품만이 아니라 그것을 복제한 각종 짝퉁도 난무한다.

일부는 그것이 짝퉁인 줄 알면서도 명품의 '겉모습'을 내비치고 있다는 만족감만으로 거리낌없이 구입하고 소비한다.

그것을 가리켜 소비문화가 아직 미성숙된 것이라고 간단히 논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도덕경제가 자리잡지 못한 '야만적 자본주의의 초기현상'으로 폄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사회적 상승의 욕구,접근하기 어려운 한정된 사회적 관계로 다가가고 싶은 에너지 또한 숨어있다.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열망,자신의 능력으로는 다 채워지지 않는 자존감을 다른 물건의 힘을 빌려서라도 채우고 싶은 콤플렉스의 보상심리가 숨어있다.

저 물건을 지니면 나도 왕이나 왕비가 된 것 같은 느낌이라는데 어쩔 것인가.

명품의 매력(魅力)은 이렇게 봉건 왕조시대를 넘어 대중화된 시민사회 자본주의를 추동하는 에너지를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통제되지 않는 에너지가 안정된 합의점을 못 찾은 채 지적 가치의 훼손과 사기,모방,그리고 혼란을 초래하는 카오스적 상태에 있다.

어찌하랴. 이것도 짜가, 저것도 짜가, 심지어 짝퉁 논문까지도 '일반화된 관행'이라고 당당히 주장되는 철면피의 권력이 횡행하는 시대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