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은 두 손으로 공손히 건네는 것이 예의더군요.

인사할 때 고개를 숙이는 게 참 신기했어요.

이게 익숙지 않아 처음에는 실수도 많이 했어요.

김치 등 매운 한국음식을 많이 먹어보지 못했지만 복날 삼계탕을 먹는다는 것은 새로 배웠지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듀크대학교 로스쿨 1년차인 로리 헬캠프씨(26).

여름방학을 맞아 지난 6월 중순부터 한국 최대 법률사무소 김&장에서 인턴과정을 밟으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 독특한 한국의 비즈니스 문화는 이곳에 와야만 배울 수 있는 것이잖아요.

두 달여 동안 한국에서 쌓은 경험은 저에게 큰 자산이 될 것입니다."

미국 라이스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하고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정치학(국제관계) 석사 학위를 따는 등 국제 외교에 관심이 많은 헬캠프씨는 국제사회에서 높아진 한국의 위상에 이끌려 6월 중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은 이미 국제사회의 메이저 플레이어이고 그 위치는 더욱 공고해질 것입니다.

앞으로 외교통상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 저에게 한국은 꼭 경험해야 하는 국가였지요."

김&장에서 주로 미국 법률을 조사하는 일을 맡았던 헬캠프씨가 한국의 비즈니스 문화와 관련,가장 먼저 알게 된 것은 한국 사람들의 근로시간이었다.

"엄청나게(tremendous) 열심히 일하더군요.

깜짝 놀랐습니다.

하루에 몇 시간이나 일하는지조차 모르겠어요."

나름대로 공부벌레,일벌레라고 자신했던 헬캠프씨도 두 손을 들 정도였다는 것.

한 달 전 성균관대학교 서머스쿨에서 3학점짜리 '국제거래법' 수업을 들을 때는 3주간 아침 7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공부하면서도 미국에 있을 때보다 1~2시간은 더 잘 수 있어 좋았다던 그이지만 한국인 변호사들의 근로시간에는 혀를 내둘렀다.

한국에서 배운 비즈니스 문화가 비록 거창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한국에서 일을 처리하는 올바른 방법과 예의 바른 태도를 배웠으니 무척 만족스럽습니다." 한국이 대북 문제를 두고 이른바 '민족공조'와 '국제공조'라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는 것도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모를 일이었다고 했다.

물론 이해하기 힘든 점도 있었다.

한국사회의 폐쇄성이다.

"주변 사람 모두가 호의적이고 친절했지만 가끔 '나는 어쩔 수 없는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받곤 했지요.

한국에서는 어떤 집단에 동화되기가 조금 어려운 것 같습니다.

특히 학연 지연 등으로 이뤄진 집단은 진입장벽이 너무 공고해 그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법을 공부하고 있고 로펌에서 인턴을 하다 보니 이야기는 자연스레 법률시장 개방으로 흘렀다.

그는 "한국에 온 지 7주밖에 되지 않았다"고 부담스러워하면서도 "한국 로펌들이 잘할 것"이라고 조심스러운 낙관론을 폈다.

"법률 시장은 맥도날드가 햄버거를 파는 것과는 다르지요.

외국계 로펌들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더라도 한국의 문화 코드에 적응하려면 한동안(for a while)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한국 변호사의 능력이 굉장하기(fantastic) 때문에 앞으로도 자신들의 몫을 계속 지킬 수도 있다고 봐요."

장차 국제무대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하고 싶다는 그는 미국인 젊은이답게 미국의 외교정책이 변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미국이 힘을 앞세워 불공평한 외교를 하고 있는데 이를 올바르게 이끌고 싶다는 것이 헬캠프씨의 장기적인 목표다.

"석사 논문을 쓰면서 크로아티아를 방문했을 때와 터키 내 벤츠지사에서 잠깐 근무했는데 그때 미국이 주도하는 외교적 불평등을 경험했어요.

가능하면 이를 시정하고 싶어 외교관이 되길 희망하고 있어요."

헬캠프씨는 지난 12일 한국을 떠났다.

당분간 런던이나 워싱턴의 로펌에서 일하게 될 것 같다고 했다.

그곳에서 미국의 외교정책에 영향을 미칠 만큼 경력을 쌓을 동안 일하고 싶다는 바람이다.

"남북 분단 상황의 현장인 비무장지대(DMZ)를 다녀온 것 이외에는 한국을 둘러볼 기회를 많이 갖지 못한 게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한국문화,특히 비즈니스 문화를 많이 배우고 느낄 수 있어 기분이 좋았습니다." 인터뷰를 마친 후 "신문 나오면 한 부 보내 달라"면서 기자에게 두 손으로 공손하게 주소가 적힌 쪽지를 내미는 헬캠프는 이미 한국 비즈니스계를 꿰뚫고 있는 듯했다.

박종서 기자·최보미 인턴기자(한국외국어대 영어과)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