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택 포스코 회장은 지난달 15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국제철강협회(IISI) 정기 이사회에 참석했다가 현지 일정을 취소한 채 급거 귀국해야만 했다.

포스코와 직접적인 고용관계가 없는 포항지역 전문건설 노조원 2500여명이 이틀 전인 13일부터 포스코 포항 본사를 불법으로 점거한 사태로 인해 이사회 자리를 뜰 수밖에 없는 사정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흘렸을 이 회장.세계 3위 글로벌 철강기업의 수장으로서 자존심에 적잖은 상처를 입었을 터다.

이 회장은 귀국 후 단호하고 의연한 대처로 주목을 받았다.

21일까지 9일간의 불법 점거에 자신의 집무실까지 노조원들에게 빼앗기고,2000억원 상당의 직·간접적인 피해에 대외 신인도 하락 등의 유·무형 손실까지 입었으면서도 "불법적·폭력적 행위와 방법은 정당화 돼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고수해 불법과의 타협을 거부했다.

이 회장은 또 노조가 자진 해산한 직후 "본사 피해 규모와 사실 관계가 확인되는 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을 통해 법적 책임을 건설노조에 물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노조의 불법을 대충 눈감아 주면서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사후에 적당히 타협하는 국내 산업현장의 관행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포스코가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는 소식은 아직 들려오지 않고 있다.

대신 "당초 (소송을 하겠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으나 충분한 법률 자문을 구한 뒤 움직일 것"이라는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물론 포스코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소송 시기와 소송 액수를 확정해버릴 경우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 전문건설업체들의 노사관계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건설노조는 최근 노사협상 과정에서 구속자 석방과 포스코의 손해배상소송 철회 등 사용자 측이 도저히 들어주기 어려운 요구조건을 내걸고 어렵게 도출한 잠정 합의안까지 파기시켰다.

이처럼 어정쩡한 상황이 계속될 경우 하청업체 근로자들이 원청업체 본사를 불법 점거한 전대미문의 '포스코 사태'는 결코 마무리됐다고 볼 수 없다.

재발방지를 보장받을 수도 없다.

포스코는 스스로 법과 원칙을 강조했던 '초심'을 다시 한번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김홍열 산업부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