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민속 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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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서민들의 생활상을 그린 단원 김홍도의 '씨름도(圖)'를 보면 씨름판의 모습이 실감난다.
용을 쓰며 들어 올리려는 사람과 이내 넘어질 것 같은 사람의 표정이 대조적이다.
구경꾼들의 표정도 재밌다.
누구 편인지 금방 알아볼 수 있게 두 패로 갈려 시선이 온통 모래판에 집중돼 있다.
엿판을 멘 떠꺼머리 총각의 장사는 누구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단원의 민화에서처럼 추석이나 단오 등 명절이나 큰 장이 서면 으레 씨름판이 벌어지곤 했다.
동네에서 힘깨나 쓴다는 장사들은 대회에 출전했고 우승한 사람에게는 황소가 상금으로 주어졌다.
씨름 자체가 풍년을 기원하거나 마을의 단결을 다지는 일종의 축제였던 것이다.
씨름은 고구려 벽화에서 볼 수 있듯이 역사가 깊은 우리 고유의 전통적인 투기(鬪技)다.
이 씨름은 조선시대에 가장 활기를 띠었고,현대적인 경기로 발전한 것은 1927년 '조선씨름협회'가 만들어지면서부터였다.
이 씨름이 위기를 맞고 있다.
IMF 이후 프로팀이 자금난을 이유로 하나씩 해체되더니 이제는 선수들마저 한 명씩 모래판을 등지기에 이르렀다.
최홍만에 이어 며칠 전에는 모래판의 황제로 군림했던 이태현마저 이종격투기로 진로를 틀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돈도 그렇지만 뛸 대회가 없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프로씨름이 처음 선보인 1983년 당시엔 경기장은 몰려드는 팬들로 가득했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저녁 9시 TV뉴스를 미뤄가며 중계를 할 정도로 씨름의 인기는 대단했다.
불과 10년 전과 지금의 상황이 이토록 뒤바뀐 것이다.
팀이 해체되고 선수들이 떠나고 관중들이 외면하는 씨름계의 도미노 현상을 두고 관계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당장 우리 조상들의 애환이 서린 민속씨름을 회생시킬 뾰족한 대책이 없어 가슴앓이는 더욱 심하다.
현실에 안주해 온 씨름인들에게 비난이 쏟아지고 있지만 '네탓'만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일본의 전통 씨름인 스모가 여전히 국민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사실을 눈여겨 볼 일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
용을 쓰며 들어 올리려는 사람과 이내 넘어질 것 같은 사람의 표정이 대조적이다.
구경꾼들의 표정도 재밌다.
누구 편인지 금방 알아볼 수 있게 두 패로 갈려 시선이 온통 모래판에 집중돼 있다.
엿판을 멘 떠꺼머리 총각의 장사는 누구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단원의 민화에서처럼 추석이나 단오 등 명절이나 큰 장이 서면 으레 씨름판이 벌어지곤 했다.
동네에서 힘깨나 쓴다는 장사들은 대회에 출전했고 우승한 사람에게는 황소가 상금으로 주어졌다.
씨름 자체가 풍년을 기원하거나 마을의 단결을 다지는 일종의 축제였던 것이다.
씨름은 고구려 벽화에서 볼 수 있듯이 역사가 깊은 우리 고유의 전통적인 투기(鬪技)다.
이 씨름은 조선시대에 가장 활기를 띠었고,현대적인 경기로 발전한 것은 1927년 '조선씨름협회'가 만들어지면서부터였다.
이 씨름이 위기를 맞고 있다.
IMF 이후 프로팀이 자금난을 이유로 하나씩 해체되더니 이제는 선수들마저 한 명씩 모래판을 등지기에 이르렀다.
최홍만에 이어 며칠 전에는 모래판의 황제로 군림했던 이태현마저 이종격투기로 진로를 틀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돈도 그렇지만 뛸 대회가 없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프로씨름이 처음 선보인 1983년 당시엔 경기장은 몰려드는 팬들로 가득했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저녁 9시 TV뉴스를 미뤄가며 중계를 할 정도로 씨름의 인기는 대단했다.
불과 10년 전과 지금의 상황이 이토록 뒤바뀐 것이다.
팀이 해체되고 선수들이 떠나고 관중들이 외면하는 씨름계의 도미노 현상을 두고 관계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당장 우리 조상들의 애환이 서린 민속씨름을 회생시킬 뾰족한 대책이 없어 가슴앓이는 더욱 심하다.
현실에 안주해 온 씨름인들에게 비난이 쏟아지고 있지만 '네탓'만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일본의 전통 씨름인 스모가 여전히 국민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사실을 눈여겨 볼 일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