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權錫 < 중소기업은행장 kskang1@kiupbank.co.kr >

무대 위 곡예사가 막대 위에 접시를 올려놓고 한껏 회전을 가한다. 접시는 절묘하게 균형을 잡으며 돌아간다. 그 사이 곡예사는 또 다른 막대에 접시를 올리고 예의 동작을 반복한다. 접시가 늘어날수록 곡예사는 바빠진다. 한 열개쯤 돌리고 나면 앞에 돌렸던 접시들의 회전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다급해진 곡예사는 허둥대며 다시 힘껏 회전을 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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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잠시,여기저기서 뒤뚱거리는 접시를 쫓아다니는 곡예사에게 더 이상 접시를 늘려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아슬아슬해 보이던 묘기는 희극으로 변하고 급기야 좌중은 웃음바다로 변한다.

필자는 이런 접시돌리기를 보면서 오늘의 CEO의 모습을 보는 듯해 쓴 웃음을 짓고는 한다. 최고경영자는 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효율적인 조직 운영을 위해 특정 사업부문이나 이슈를 강조해야 할 때가 있다. 조직 구성원들은 최고경영자의 의중(意中)을 알아차리고 이내 해당 부문에서 괄목(刮目)할 만한 실적을 내놓는다.

하지만 최고경영자의 관심이 한 곳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CEO는 기업의 확대재생산을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이슈를 발굴해내고 관심을 옮겨가야 한다. 문제는 이럴 때마다 조직 구성원들도 약속이나 한 것처럼 먼저 관심을 두었던 일에서 급격히 손을 떼고 만다는 것이다. 마치 곡예사의 손길을 떠난 접시가 회전력을 급격히 잃어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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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주가라는 말이 나올 만큼 기업경영에서 최고경영자의 리더십은 그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리더십은 빠지지 않는 주제다. 그래서일까 오늘의 기업이나 조직은 '리더십의 함정'에 빠져있는 느낌이다.

걸출한 리더가 이끄는 조직은 그렇지 않은 조직에 비해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데 유리하다. 그러나 리더십이 조직 전체를 설명해 줄 수 없으며 리더십에만 의존하는 조직을 건강하게만 볼 수도 없다.

흔히 잭 웰치의 탁월한 리더십이 오늘의 GE를 낳았다고 얘기하나 GE가 아니었던들 잭 웰치의 리더십이 그처럼 힘을 발할 수 있었을까? 100년 넘어 다져진 조직의 저력이 잭 웰치를 만나 더욱 힘을 얻었다고 해야 맞는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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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1세대가 저물고 2세 경영이 본격화될 즈음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들은 드라마틱한 부침(浮沈)을 거듭했다. 일부 기업의 쇠퇴를 2세 경영인의 리더십 탓으로 돌리기도 하지만 근원적인 원인은 조직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

열정과 창의,도전정신이 살아있는 조직,성장의 동력을 내부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는 조직,리더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 살아 움직이는 조직이 지속적인 발전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스스로 회전하는 접시라면 곡예사가 누구이든 접시의 수를 늘려나가는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