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거대한 공룡 한 마리가 잠에서 깨어 눈을 떴다.

배가 고팠다.

공룡은 어슬렁어슬렁 먹이를 찾아나섰다.

마침 커다란 뱀꼬리 하나가 숲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공룡은 머리를 쭉 뻗어 그 뱀꼬리를 콱 물어뜯었다.

한 덩어리의 고기를 뜯어먹은 뒤 돌아서려는데 갑자기 꼬리에서 심각한 통증이 몰려왔다.

알고 보니 공룡이 자기 꼬리가 뱀 꼬리인 줄 알고 덥석 뜯어먹은 것이었다.

우리는 흔히 거대조직 내 의사전달의 비효율성을 이렇게 비유하곤 한다.

공룡은 오래 전에 지구상에서 사라졌지만 경제계의 공룡,즉 대기업의 비효율성은 현재에도 실존한다.

세계적으로 완성품 조립업체들이 자사의 부품업체에 대해 한국에서처럼 턱없이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하거나 납품대금 결제를 몇 개월씩 미루는 사례는 거의 없다.

실제 완성품업체와 부품기업은 하나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동일체다.

그러나 공룡의 머리가 자기의 꼬리를 뜯어먹는 것과 같은 사례가 아직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대기업의 '제 살 깎아먹기'는 하루바삐 혁신해야 할 과제다.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에서 이 같은 폐습을 혁신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중소기업은 태생적으로 특수윤활유·금형·플라스틱부품·공구 등 다양한 부문에서 대기업에 비해 강점을 가지고 있다.

경영 측면에서도 중소기업의 강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적은 돈으로도 창업을 할 수 있고 투자자금 회수 속도도 대기업보다 훨씬 빠르다.

중소기업 관련 통계에서 볼 수 있듯이 자본투자효율도 대기업에 비해 높다.

고용효과도 높으며,경영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시간도 짧다.

이처럼 다양한 강점을 지닌 중소기업이 왜 우리나라에서는 약자 취급을 받고 대기업에 대해 종속관계로 전락했을까.

이는 과거 우리 정부가 오랜 기간 대기업 위주의 성장정책을 지속해왔기 때문이다.

또 열약해진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직접지원 위주의 정책을 펼치다 보니 중소기업이 자생력을 갖출 기회를 잃고 말았다.

지난 50여년간 정부는 '중소기업기본법''중소기업진흥법'등을 제정해 중소기업 지원체제를 구축했다.

유망 중소기업을 발굴해 우선적으로 지원해주기도 하고 '중소기업 특별자금'으로 경영애로를 겪는 기업에 긴급자금을 수혈해주기도 했다.

그 결과 어느 정도의 외형적 성장을 이끌어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정책들이 중소기업의 경쟁력과 체질을 강화하는 '질적 성장'까지 이루어냈을까.

답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정부의 정책이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중소기업의 자생력을 키우는 것보다는 경제성장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데 치중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역대 정부의 중소기업정책은 다음과 같은 한계를 드러냈다.

첫째, 정부정책이 경쟁 제한적이고 직접지원 위주로 추진되다 보니 중소기업의 자생력을 배양하기 위한 정책은 상대적으로 미흡했다.

이로 인해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기업들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방향을 전환하거나 원활하게 퇴출하기가 어려워지는 등 부작용이 유발됐다.

둘째,상대적으로 경기변동에 많은 영향을 받는 중소기업의 경영안정을 위해 임기응변식 정책을 개발·추진하면서 백화점식의 시책들이 공존하는 양상을 빚었다.

셋째, 자금 기술 인력 등 문제의 유형에 따른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데만 주력함으로써 정작 중소기업의 유형 및 성장단계에 따른 차별화된 지원정책을 개발하고 체계적으로 시행하려는 노력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넷째, 중소기업을 주로 보호와 육성의 대상으로 인식함에 따라 다수의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지원방식을 택하게 됐다.

그 결과 발전 가능성이 큰 창업·기술형 중소기업에 대한 적극적 지원보다는 과거의 실적 및 담보력을 고려한 소극적 지원이 우세하게 됐다.

다섯째, 경제환경의 변화에 따라 지원시책이 적절히 바뀌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의 '경영애로에 대한 지원'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나머지 한번 개발된 정책이 별다른 변화 없이 장기간 지속돼 정책의 실효성이 저하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정부의 중소기업정책의 핵심은 무엇일까.

어떠한 문제인식에 기초하고 있으며 어떠한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일까.

정부는 1990년대 후반 이후의 경제환경 변화에 주목했다.

글로벌화가 급속히 진전된 이 시기에는 기업간 경쟁이 자본이나 노동같은 생산요소보다 지식과 정보의 창출,활용이 더 크게 작용하는 지식기반형 경제구조로 전환되는 등 세계의 경제 환경이 급속히 변화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상당수는 여전히 저가경쟁에 의존하는 요소투입형 성장전략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머지 점차 경쟁력과 성장동력을 상실했다.

차별화된 독자기술을 확보하지 못해 진입장벽이 낮은 분야에서 과당경쟁을 지속하다 보니 자연히 수익성이 저하되고 이로 인해 생산성 향상마저도 둔화됐다.

이 같은 그간의 혼란과 고통을 통해서 이제 우리 경제는 노동과 자본의 투입 규모보다 기술혁신을 통한 생산성 증대가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혁신주도형 경제구조로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정책도 그간의 보호와 육성 위주의 지원방식에서 탈피해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만들고 기술혁신과 경영혁신 역량 강화를 통해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한다는 공감대가 정부 내에서 형성됐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정부는 무엇보다도 경제의 뿌리인 중소기업이 성장을 주도하는 '혁신주체'로 거듭나도록 육성하는 방향으로 정책기조를 전환했다.

상생관계 구축을 통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 발전 역시 정부가 역점을 기울이는 사항이다.

중소기업이 튼튼해야 대기업도 강해지고 결국 나라 경제가 튼튼해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바른 중소기업정책이 양극화 문제 해결의 핵심이라고 판단,중소기업을 경제정책의 중심에 두고 정책 접근 방식부터 바꾸어 나갔다.

실체적이고 구체적인 현장 중심의 정책 시행에 무게 중심을 두되 정책입안부터 시행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지속적으로 점검함으로써 실효성을 확보토록 했다.

이치구 한국경제 중소기업연구소장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