劉喆相 < 고려대 교수·사회환경시스템공학 >

2002년 태풍 루사나 2003년 태풍 매미 이후 작년까지 우리나라는 홍수재해라는 측면에서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운이라고 표현하는 까닭은 우리나라가 예외적인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홍수재해에서 비껴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우리나라는 다시 큰 홍수재해를 겪고 있으며,우리나라가 홍수재해의 사각지대(死角地帶)가 아님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중국 등 우리와 인접한 여러 나라에서도 극심한 홍수재해를 겪고 있다는 데서 홍수재해가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닌 지역적인 또는 범지구적인 문제라는 점도 일깨워준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 일련의 홍수재해를 겪으면서 이뤄졌던 투자 효과를 보고 있는 지역이 많으며,아울러 홍수재해 대응(對應) 시스템도 향상돼 과거보다 훨씬 신속한 대처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홍수는 드문 일이 아니다.

매년 예외 없이 크고 작은 홍수가 끊이지 않는다.

이는 물론 우리나라가 아시아 몬순지역에 위치해 아시아 다른 나라들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홍수재해가 앞으로 더욱 커지고 또한 빈번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이미 기정사실로 인정되고 있는 지구온난화 및 이에 따른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보다 극심한 홍수 및 가뭄이 빈번할 것으로 예측된다.

따라서 과거의 관측 기록을 근거로 한 여러 가지 치수(治水) 기준 및 관련 수공구조물들의 역할은 훨씬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보다 큰 홍수가 더 빈번히 발생할 가능성이 훨씬 커질 것임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이를 인정하고 대비하지 않는 한 홍수피해의 감소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홍수재해에 대처하는 가장 적극적인 수단인 댐의 건설도 보다 긍정적으로 고려해야할 필요가 있다.

1997년 이후 세 차례에 걸친 경기북부의 대규모 홍수피해로 인해 여러 가지 대응수단이 마련됐지만 가장 중요한 수단인 한탄강댐이 표류(漂流)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영월지역뿐만 아니라 남한강 및 수도권의 홍수방어에 필요한 영월다목적댐이 백지화된 것도 우려할 만한 점이다.

과거 한강유역에 건설된 많은 댐들 덕분에 홍수피해를 이정도로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댐의 조절능력이 한계에 이르고 있으며,이번 홍수의 경우에도 강우가 조금 더 지속됐더라면 아주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물과 관련된 정부 부처들 사이의 이해관계도 일관된 정책추진을 어렵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

물 이용을 관장하는 부처, 물을 깨끗이 보전하려는 부처, 아울러 물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 이를 관장하는 부처가 달라 각각 다른 목소리를 냄으로써 일관된 정책추진에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우선순위는 정해져야 한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 내 여러 움직임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 왔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아직 나타나고 있지 않은 상태다.

마지막으로 현재 우리나라 정도의 경제력을 감안하면 소위 '인명피해 100분의 1로 축소'와 같은 슬로건을 걸고 국가적인 투자를 해 볼 때가 됐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다.

선진국의 경우를 살펴보더라도 우리 정도의 경제규모를 갖춘 시점에서 재해로 인한 사망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투자를 적극적으로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이와 관련된 연구사업 등이 기획되고 또 추진되기도 했지만, 역시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토의 유지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부처에서조차 홍수방재의 중요성에 대해 어느 정도의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경제적인 손익계산은 유보하더라도 유사한 규모의 홍수발생으로 이웃나라에 비해 10배 20배의 인명피해가 발생한다는 것은 창피하면서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