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헌법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권력자의 야심과 월권에 의해 훼손되고 칼질을 당한 흔적이 너무도 역력하다.

대표적으로 꼽히는 것이 '사사오입(四捨五入) 개헌'이다.

1954년 11월29일 당시 집권당인 자유당은 이승만 대통령의 영구집권을 위해 개헌을 단행했는데,표결결과 1표가 모자라 부결이 선포됐다.

재적의원 203명의 3분의 2는 136명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틀 후 사사오입이라는 해괴한 논리가 적용돼 부결이 번복돼 버린 것이다.

3선개헌이나 유신헌법도 권력욕의 산물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 헌법은 출발부터가 정치적인 입김에 휘둘렸다.

헌법학자 유진오 교수가 당초 마련한 제헌헌법초안은 내각책임제와 양원제였는데도,이승만과 그를 둘러싼 권력자들에 의해 대통령중심제와 단원제로 바뀐 것이다.

제정과정도 지극히 형식적인 대체토론 축조심의 자구수정의 단계를 거쳐 불과 40일 만에 이루어졌다.

헌법의 기본정신이 국민들의 행복추구권과 인간답게 살 권리 등을 보장하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국민이 인권을 보장받는 주체라는 얘기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권력을 행사하는 수단으로 둔갑해 버린 탓에 헌법이 힘있는 자와 가진 자의 편이라는 인식 속에 묻혀져 왔다.

국민들의 뇌리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저 박제된 헌법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러한 헌법이 사회통념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관심을 모은지는 불과 2~3년 전부터다.

대통령 탄핵,신행정수도 이전,양심적 병역거부,호적법 등이 정치·사회적인 문제로 잇따라 부각되면서 헌법이 우리 생활 가까이 있다는 인식을 비로소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또다시 헌법개정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대통령 중임제를 두고 벌이는 정치권의 공방이 심상치 않아서다.

오늘 제헌절을 맞아 헌법의 정신을 되새겨 봐야 할 것 같다.

국민의 합의에 의한 합리적인 헌법개정은 지극히 마땅한 일이지만,호헌(護憲)정신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