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2차 협상이 마지막 날인 14일 회의가 양국간 힘겨루기로 무산되는 등 파행 끝에 종결됐다.

이번 협상에서 양국은 상품 분야의 양허안(개방안) 틀에 합의하고 8월 중순까지 양허안을 일괄 교환키로 하는 등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한국의 약가제도 등을 놓고 충돌을 빚으면서 전체 협상 자체가 경색되는 모습이다.

김종훈 한·미 FTA 한국측 수석대표는 이날 2차 협상 결산 브리핑에서 "미국 측이 지난 11일 의약품 작업반에서 우리측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 추진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며 퇴장한 데 이어 13일 무역구제와 서비스 분과 회의에도 불참했다"며 "우리 측도 14일 상품,환경 분과회의를 전면 취소해 대응했다"고 밝혔다.

미국 측이 불참한 13일 무역구제 분과에선 반덤핑,서비스 분과에선 전문직 비자쿼터 등 한국 측 요구사항을 논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양국은 이미 합의한 농산물·상품·섬유 양허안의 8월15일 이전 일괄교환은 예정대로 진행키로 했다.

3차 협상도 9월4일부터 닷새간 미국에서 열기로 했다.

의약품 '시한폭탄' 부상


의약품은 농산물,자동차와 함께 미국 측 공세가 예상된 분야.특히 지난 5월 보건복지부가 가격 대비 효과가 우수한 의약품만 선별해 건강보험 적용대상에 등재시키는 '포지티브 리스트' 방식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발표하자 미국 측은 강력히 철회를 요구해왔다.

웬디 커틀러 미국 측 협상대표는 "한국의 포지티브 리스트 제도는 미국 제약업체의 혁신적 신약을 차별할 것"이라며 "협상 시작 전에 이런 제도를 발표,의미있는 협상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중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반적 협상의 균형을 위해 무역구제와 서비스 협상도 중단시켰다"고 덧붙였다.

즉 한국 측이 새로운 약가제도 철회를 거부하자 의약품 분과에 더해 한국 측 요구가 많은 분과의 협상에 불참하는 등 실력행사에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약제비 적정화 방안은 신약이나 복제약에 무차별적으로 공평무사하게 시행될 수 있다"며 "이 방안을 추진한다는 정부 입장은 확고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방법론상에서 미국 측과 협상이 가능하다"며 "협상을 계속하면 미국 측 오해를 풀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보건복지부가 예정대로 오는 9월1일 새 약가제도를 시행할 경우 협상에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양허안은 합의대로 교환


2차 협상이 파행적으로 종결됐지만 전면적인 협상 결렬의 단계로 볼 수는 없다.

김 대표는 "양측이 서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기 위해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라며 "하나하나의 사안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우리 입장이 반영되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협상 중 서로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일어날 수 있는 '힘겨루기'일 뿐이라는 것이다.

특히 양측은 이미 합의한 양허안 교환일정이나 3차 협상 일정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밝혀 강한 협상의지를 보여줬다.

커틀러 대표도 "의약품에 대한 이견은 도전적이지만 극복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면서 "중단된 의약품 협상은 오는 9월4일 열릴 3차 협상에서 재개하기로 김 대표와 합의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도 "다른 분과는 예정대로 일정대로 잘 마쳤다.

지금 단계에서 전체 협상 결렬을 이야기하는 것은 비약"이라고 강조했다.

3차 협상선 대립 격화될 듯


상품 양허안이 8월에 교환되고 서비스와 상품 분야에서 상대방에 대한 개방 요구를 담은 관심리스트(Request List)가 3차 협상 전까지 주고 받으면 협상은 본 궤도에 오른다.

그러나 양측의 민감분야인 농산물과 섬유 분야는 양허안의 틀조차 합의가 불가능했던 만큼 주고받기 협상에선 더욱 난항이 불가피하다.

김 대표는 "협상은 차수를 더해갈 수도록 대립이 격화될 것"이라며 "3차 때는 교환된 양허안과 관심 리스트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힘겨루기에 들어가며 4,5차 때는 우선순위를 정해 주고받기를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