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엽을 감아서 쓰는 시계를 차고,LP레코드로 음악을 듣고,타자기로 글자를 치고,전자계산기 대신 주판으로 셈을 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세월이 거꾸로 가는 듯 옥션에서는 '황학동 벼룩시장'이 등장했다.

수십년 전에 쓰였던 양은 도시락,트랜지스터 라디오,무쇠다리미,물레에서 뽑아낸 실을 감은 나무실패,인두다리미,무쇠솥 등이 인기상품들이다.

그런가 하면 이메일이 아닌 종이에 편지를 쓰고,펜으로 일기를 작성하기도 한다.

인간적인 따뜻한 감성을 전달하고,'나'만의 여유와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서라고 하는데,마치 마음의 고향을 찾아가는 것 같다.

라디오만 해도 얼마나 많은 추억이 서려 있는가.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온갖 상상을 해가며 연속극을 들었고,한밤의 음악 프로그램에서 팝송을 배우는 재미도 쏠쏠했다.

오래전의 만화 캐릭터가 부활하는가 하면,이제는 디지털 제품조차도 과거로 회귀하려는 듯 추억과 향수를 담은 복고디자인이 유행을 타고 있다.

휴대전화 글자판이 네모꼴에서 다이얼 전화방식인 둥근 모양으로 바뀌는 게 한 예다.

디지털시대에 이 같은 아날로그로의 회귀를 두고 '아날로그 향수(Analogue Nostalgia)'라는 이름이 붙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정보의 흐름이 빨라지고 생활이 편리해지기는 했지만,인간적이고 따뜻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해서인 것 같다.

디지털기기로는 서로에 대한 인간적인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 그리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얘기다.

'느리게 살자'는 것도 디지털의 비인간적인 면에 대한 거부에서 비롯되고 있다.

속도보다는 정신적 여유와 안식을 찾자는 일종의 '인간성 회복운동'인 셈이다.

디지털기술의 발전에 비례해서 세상은 좀더 편리하고 빨라질 것이다.

그럴수록 정서적인 것과 옛날 것을 더욱 선호하는 경향도 뚜렷해 질 것 같다.

친필로 안부편지를 쓰고 손수 카드를 만드는 일만이라도 우선 실천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