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東根 < 명지대 교수·경제학 >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의 재능을 높이 사줄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노력한다.

이런 점에서 시장은 자신의 재능을 구매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시장이 존재하지 않으면 개인의 재능은 묻힐 수밖에 없다.

시장에서의 경제주체들 간 자유로운 경쟁이 촉진될 때,사회는 그런 경쟁들을 통해 끊임없이 보다 나은 길을 찾게 된다.

따라서 경쟁은 발견과정이다.

시장경제의 높은 효율은 그런 발견에서 나온다.

시장은 깨어있는 자에게 기회를 준다.

참여정부 들어 저성장의 골이 깊어진 것은 경제 활력이 저상(沮喪)됐기 때문이다.

경제 활력은 시장에서 나오기 때문에,좋은 정책이란 결국 시장이 활력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참여정부의 정책 실패는 정부가 시장을 이기려 한데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시장경제는 자력으로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체제다.

그 기저에는 국가(타인)에 자신의 삶을 '웬만해선' 위탁하지 않겠다는 자조(自助)의 실천의지가 깔려 있다. 따라서 국가가 모든 개인의 삶을 책임져줄 수 있는 듯한 신호를 보내는 건 무책임한 처사다. 아니면 부(富)의 원천에 대한 무지를 고백한 것이다.

국가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경제는 서서히 활력을 잃어간다.

근년의 우리 현실이 그렇다.

참여정부의 '큰 정부론'은 좌파적 지적조류에 근거하고 있다.

좌파는 인간의 이성에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그들에게 인간 이성은 대문자 R로 시작되는 이성(reason)인 셈이다.

따라서 이성에 기초를 둔 정부조직을 통해 시장을 통제♥관리함으로써 윤리적이고 이상적인 사회를 설계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또한 참여정부의 큰 정부론은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기득권 위주의 경제구조를 바꾸고 성장과 분배의 새로운 틀을 짜는 것이다.

분배,형평,복지,약자보호,양극화 해소가 그 핵심이다.

참여정부의 눈에 도덕적이고 온정적이며 일하는 정부가 무질서하고 비윤리적인 시장 위에 군림(君臨)하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그리고 정부를 시장 위에 위치시키는 것을 개혁으로 생각하고 있다.

독선적 시대정신과 시대착오적 큰 정부는 시장경제의 정상적 움직임을 막는다.

특정 계층에 대한 노골적 질시와 징벌적 과세,재벌규제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비합리적 규제와 정부의 시장개입,기업가정신 부정 등이 그 사례다.

성장과 분배의 거대 담론은 급기야 '질시의 정치'(politics of envy)를 작동케 했다.

80 대 20의 승자독식 사회의 양극화 문제 제기가 그 전형이다.

분명한 것은 20% 고소득층에게 징벌적으로 과세해도 나머지 80% 소득계층의 분배를 개선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잘사는 80% 사람이 못사는 20%를 부양하는 것이 논리에도 맞고 또 도덕적이다.

민간의 기부(寄附)가 공적 부조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민간이 기부하면 기부자가 수혜자를 선택하기 때문에,수혜자는 언젠가 베푼 사람에게 갚고자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장래에 남을 도울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정부를 통한 소득 이전은 타성을 부른다.

상위 10%,또는 상위 2% 사람에게 세금을 부과해 나눠 주는 경우,가난은 청구권리로 변한다.

가난이 권력이 되는 사회가 된다.

이는 '실패에의 안주'를 부를 뿐이다.

프리드먼은 자본주의의 위대한 업적으로,재산과 부의 축적이 아닌 시장참가자에게 제공한 그들의 능력을 넓히고 발전시키고 향상시킬 기회를 준 것으로 설파(說破)했다.

시장의 역동성은 가난한 사람에게 인생 역전의 희망을 전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를 인식하지 못하면 정부 개입을 부르게 된다.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

정부가 시장과 경합할수록 서민들의 삶의 무게는 무거워진다.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