梁奉鎭 < 비상임논설위원·YSK대표 >

방한 중인 로버트 갈루치 전 북핵대사와 점심을 같이했다.

워싱턴 특파원 시절 자주 보던 얼굴이라 반가운 재회였지만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난 직후라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식의 인터뷰 시간이 돼버렸다.

갈루치와 북한사람들은 전생(前生)에 특별한 인연을 가진 사람들인지 모른다. 1994년 10월 갈루치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북한관료인 강석주·김계관과 줄다리기 회담을 통해 '제네바 핵합의'를 이끌어낸 인물이다.

그런데 이들이 만들어낸 합의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합의(agreement)가 아니라 '합의의 틀(agreed framework)'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가진 사생아 같은 존재였다.

완전한 형태의 합의였다기보다는 당사자 모두가 1994년의 특별한 상황,즉 일촉즉발의 전쟁위기에서 그저 '한숨 돌릴 수 있는 여유(breathing room)'를 제공한 '틀' 정도에 그친 것이었다.

우연치고는 묘하게도 제네바 합의 이후 4년이 지난 1998년 8월 갈루치가 한국을 찾자 북한은 논의의 중심을 '핵무기'에서 '미사일'로 바꿔버리려는 듯 일본열도를 넘어가는 장거리 미사일을 쏘아올렸다.

갈루치-강석주-김계관이 만들어 낸 '핵(核) 틀'이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는 북한은 이번에 또다시 갈루치의 한국방문에 맞춰 특별한 인연을 과시라도 하려는 듯 미사일 실험을 재개한 것이다.

이번 미사일 발사의 배경이 무엇이겠느냐는 질문에 갈루치는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 아니겠느냐"고 답했다.

갈루치는 그러나 "관심을 끌었다는 점에서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지만 그 효과와 합리성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그 밖의 성과는 없었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북한은 한국과 미국의 관계를 이간질하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고 답했다.

갈루치는 한 국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UN 안보리에서 대북 제재(制裁)나 북한규탄 결의안을 끌어내는 과정에서 한국이 미국편에 서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실제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동맹국들이 같은 목소리(united voice)를 내야 한다"며 한국의 분발(?)을 촉구하는 간접화법을 쓰고 있는 것이다.

갈루치는 노무현 참여정부의 한·미관계를 '소원한 관계'로 진단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미 백악관,국무부,그리고 한국정부의 공식 채널을 통해 들리는 한·미관계는 '돈독한 것'이라고 포장되고 있다.

그러나 점심자리의 갈루치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no relations) 관계'라고 표현했다.

갈루치는 현재 워싱턴 조지타운대의 외교를 책임지고 있는 국제대학장이다.

정부 현직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백악관,국무부,국방부의 주요 의사결정권자들과 수시로 만나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토론하는 오피니언 리더인 것이다.

그가 쓴 '북핵위기의 전말(Going Critical)'은 북핵과 관련한 미·북 간 내면 대화의 기록,그 자체로 평가되고 있다.

이제 그의 입은 '외교적 수사'의 틀에 묶여 있지도 않다.

그의 진단과 진술이 보다 솔직한 것일 뿐 아니라 '진실에 가깝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 대통령은 2003년 "국헌을 준수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겠다"고 취임선서를 했다.

그러나 미사일이 발사되는 순간 노 대통령은 그가 보호해야 할 시민들이 탄 비행기가 미사일이 날아가는 지역에 노출되도록 방치했다.

그것도 언제 어떻게 궤도를 바꿀지 몰라 더 위험한 '고장난' 미사일의 희생이 될 수 있었던 상황을 모른 체한 것이다.

대통령이 유념해야 할 제1과제를 유기(遺棄)한 것이다.

이미 한나라당의 1차 탄핵 시도로 노 대통령은 '옐로 카드'를 받은 경력이 있다.

우리 국민들은 이제 또다시 옐로카드(레드카드)를 꺼내들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bjyang@leeinternatio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