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산하 핵심 사업장인 현대자동차, GM대우차 노조 등이 산별노조로 전환키로 함에 따라 국내 노동계에 산별노조 시대가 개막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노동운동을 주도해왔던 현대차노조 등이 산별노조로 전환하면서 다른 대기업 노조는 물론 중소 노조들도 잇따라 산별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대차 노조 등의 산별전환으로 국내 노동계도 산별 시대로 접어들게 됐지만 노사정이 산별체제에 대해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은 상태여서 산별체제가 정착되는 동안 노사간 갈등이 심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노동계 전문가들은 기업별노조에서 산별노조로 전환하는 것은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에 `빅뱅'이라고 불릴 만큼의 충격파를 던져줄 사안인 만큼 노사정이 산별체제 정착을 위한 협의에 서둘러 나서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 산별노조 전환 `배경' = 노동계가 산별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노조조직률 하락 등으로 인해 현재의 기업별노조 구도로는 더이상 투쟁동력을 모을 수 없다는 절박한 판단에 따른 것이다.

내년부터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이 금지되고 복수노조제가 시행되면 노조 기반 자체가 흔들려 정부와 사측을 대상으로 한 교섭력이 크게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위기감도 노동계의 산별전환 추진 배경으로 작용했다.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률은 지난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만 해도 20%를 웃돌았으나 관행적인 파업과 노동계내의 비리사건 등으로 노조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면서 지난해에는 10.6%로 추락했다.

노동계는 산별노조 전환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각종 정치, 사회적 이슈에 대해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노사갈등 격화 우려 = 현대차노조의 산별전환으로 노동계의 산별체제 구축이 가속화되면 산별체제 정착 이전까지 노사간 갈등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경영계는 산별체제로 전환한 노동계가 공동교섭과 공동행동 등 강력한 교섭력을 바탕으로 사측에 무리한 요구를 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고 있다.

또 정치적, 전투적 성향이 강한 국내 노동계가 산별전환 이후 경제외적인 정치, 사회 이슈에 대해서도 일정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파업 등을 남발할 경우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영계는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계는 산별노조로 전환하면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책임의식도 높아져 오히려 지금보다 노사정 관계가 안정될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산별노조가 파업 등 투쟁에 나서게 되면 그 파급효과가 기업별노조보다 훨씬 커기 때문에 행동에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다는 논리다.

산별체제의 장단점에 대한 판단을 지금 당장 내리기는 힘들지만 산별체제가 정착될 때까지 노사간 갈등은 피하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 산별 전환시 비정규직 등 `혜택' = 노조의 정치적 성향이 강한 우리 노동계 풍토에는 산별노조가 적절치 않다는 비판도 적지 않지만 산별노조 체제가 주게될 긍정적인 요소도 상당히 많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산별노조로 전환하면 사회 양극화로 인해 임금 등의 근로조건에 불이익을 받고 있는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공동교섭을 통해 교섭력을 발휘할 수 있게 돼 자신들의 권리를 찾을 기회가 확대된다.

또 사회 전반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는 거대 대기업 노조의 이기주의와 기득권을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는 길도 열리게 된다.

아울러 산별체제가 정착되면 노조가 개별적 이해관계를 벗어나 제조업 공동화 등 산업 전반의 공통적인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는 토대도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 노사정 산별체제 `의견수렴' 필요 = 노동계 전문가들은 찬반 논쟁에 상관없이 노동계가 이미 산별체제로 들어감에 따라 노사정이 산별체제 정착 이전의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서둘러 논의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문가들은 공동교섭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최저협약과 표준협약 등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고 이중, 삼중으로 교섭이 이뤄져 교섭비용이 불필요하게 증가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도 있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정부도 노사관계 법ㆍ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 등을 논의할 때 산별체제 정착을 위한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박사는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등으로 인해 노동계는 어떤 식으로든 변신을 모색할 수 밖에 없다"며 "현대차노조 등이 산별체제로 전환한 만큼 노사정 모두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현영복 기자 youngb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