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철 <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장 jcoh@kcta.or.kr >

지난달 방한한 영국의 지체장애인 앨리슨 래퍼가 우리나라 장애인들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감동을 준 가장 큰 이유는 그녀가 무엇보다 당당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당당히 아이를 낳아 기르고,당당히 치장하고,당당히 말했다.

'오체불만족'의 주인공 오토다케 히로타다에게서도 우리는 같은 당당함을 느꼈다.

그들의 당당함은 인간에게는 누구나 핸디캡이 있게 마련이라는 인식과 팔과 다리가 없어 정상인 보다 상대적으로 불편하지만 보통사람보다 더 강인한 의지로 정상인과 크게 다르지 않게 살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이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사회 환경과 나라의 정책이 오늘날의 그들을 가능케 했다고도 생각한다.

다시 말해 후진국에서라면 래퍼도 오토다케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학 재학 중 입대했다가 동료 사병의 오발로 하반신 마비가 된 청년이 있었다.

투병 중이던 아버지는 아들의 사고에 충격을 받고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는 등 집안에 불행이 겹쳤으나 사고 전부터 사귀던 여성의 변함없는 사랑 덕분에 청년은 용기를 얻고 미국으로 건너가 전공인 컴퓨터 공학을 계속 공부한 뒤 지금은 그곳에서 직장을 구해 잘 살고 있다.

이 청년의 어머니가 한국에서라면 아들이 도저히 자립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미국에 가기를 정말 잘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점차 개선되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장애인들에 대한 멸시 내지 편견,무관심 그리고 차별이 엄존해 있다.

그래서 웬만한 동네에는 '님비'현상 때문에 장애인 시설이 자리잡기 어렵고,장애아동들이 교육을 받기도 쉽지 않다.

장애아를 둔 부모들이 기회만 닿으면 미국 등으로 떠나려고 하는 이유는 이들 나라가 장애인이 정상인들과 함께 공부하고 생활하는 데 따른 불편함이 적고,사회보장이 잘 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지하철이나 복잡한 인도에서 시각장애인 등 중증의 장애인들이 구걸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6·25 직후 전상자(戰傷者)들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적선을 요구하다 여의치 않으면 의족과 의수를 집어 던지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그때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장애인에 대한 사회인식과 사회 보장은 과연 어느 정도에 와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애인에 대한 교육과 취업의 기회 제공은 물론 이들이 차별받지 않고 정상인들과 함께 당당히 나들이 하고 운동하며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배려하고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일일 것이다.

호국보훈의 달,전쟁의 상흔 속에서 평생 장애인으로서 아직도 병상에 누워 있는 참전용사들과 그 가족이 겪고 있는 고통과 슬픔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