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1일자) 경쟁과 수월성 외면하는 교육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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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인적자원부가 또 실험에 나섰다. 외국어고나 자립형 사립고에 대해선 학생 모집에 규제를 가하고, 새로이 협약형 자율학교를 도입한다는 내용의 이른바 '협약형 자율학교 시범 운영 및 외고·자사고 정책방안'이 그것이다. 그러나 정책의 성공은 둘째치고 느닷없는 정책전환으로 벌써부터 적잖은 혼란(混亂)이 일고 있는 점만 보더라도 교육당국이 과연 이래도 되는 것인지 비판을 면키 어렵다고 본다.
교육부는 현재 중학교 2학년이 고교에 진학하는 내년(2008학년도 입시)부터 외국어고 지원을 현재의 전국 단위에서 거주지 시·도로 제한하기로 했다. 이미 특정 외고를 염두에 둔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황당해 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더 나아가 정부는 설립취지에 맞지 않게 운영되는 외고는 모집단위를 광역지자체에서 아예 단위학군으로 축소하는 방안까지 추진하기로 했다니 학부모와 학생들의 불안감은 더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와 함께 교육부는 그동안 확대 필요성이 제기돼왔던 자립형 사립고에 대해 학생 모집 단위를 시·도로 제한하는 것을 전제로 2~3개 시범학교를 허용하기로 했다. 한마디로 자립형 사립고는 현상유지 차원에서 제한적 허용에 그친 셈이다.
대신 교육부는 정부와 지자체가 학교 운영비를 지원하고 민간이 운영을 맞는 협약형 학교 몇 개를 내년부터 시범운영하겠다고 밝혔다. 등록금은 공립학교 수준으로 하되 교과과정 등에서 자율성을 부여, 수준높은 교육을 제공하겠다는 얘기다. 취지로만 보면 굳이 반대할 까닭이 없다. 그러나 그렇게만 볼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외고와 자사고에 대해 그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사교육을 조장하고 입시 경쟁을 유발(誘發)했다고 비난했다. 여기에 모집 등에 대한 규제까지 들고 나온 것을 보면 외고나 자사고에 대한 선택권 제한을 통해 검증되지도 않은 협약형 학교로 몰아가려는 의도라고 의심치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는 진정한 학교체제의 다양성, 또 선택권 확대와는 거리가 먼 얘기다.
근본적으로 학교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경쟁을 통해 다양화·특성화·차별화되도록 하는 것이 정도다. 그것이 국제적 추세이기도 하다. 경쟁을 금기시하고 평준화 틀을 고수하려다 보니 온갖 실험이 나오고 그것이 또 다른 교육현장의 왜곡이 되고 마는 악순환(惡循環)을 언제까지 되풀이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교육부는 현재 중학교 2학년이 고교에 진학하는 내년(2008학년도 입시)부터 외국어고 지원을 현재의 전국 단위에서 거주지 시·도로 제한하기로 했다. 이미 특정 외고를 염두에 둔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황당해 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더 나아가 정부는 설립취지에 맞지 않게 운영되는 외고는 모집단위를 광역지자체에서 아예 단위학군으로 축소하는 방안까지 추진하기로 했다니 학부모와 학생들의 불안감은 더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와 함께 교육부는 그동안 확대 필요성이 제기돼왔던 자립형 사립고에 대해 학생 모집 단위를 시·도로 제한하는 것을 전제로 2~3개 시범학교를 허용하기로 했다. 한마디로 자립형 사립고는 현상유지 차원에서 제한적 허용에 그친 셈이다.
대신 교육부는 정부와 지자체가 학교 운영비를 지원하고 민간이 운영을 맞는 협약형 학교 몇 개를 내년부터 시범운영하겠다고 밝혔다. 등록금은 공립학교 수준으로 하되 교과과정 등에서 자율성을 부여, 수준높은 교육을 제공하겠다는 얘기다. 취지로만 보면 굳이 반대할 까닭이 없다. 그러나 그렇게만 볼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외고와 자사고에 대해 그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사교육을 조장하고 입시 경쟁을 유발(誘發)했다고 비난했다. 여기에 모집 등에 대한 규제까지 들고 나온 것을 보면 외고나 자사고에 대한 선택권 제한을 통해 검증되지도 않은 협약형 학교로 몰아가려는 의도라고 의심치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는 진정한 학교체제의 다양성, 또 선택권 확대와는 거리가 먼 얘기다.
근본적으로 학교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경쟁을 통해 다양화·특성화·차별화되도록 하는 것이 정도다. 그것이 국제적 추세이기도 하다. 경쟁을 금기시하고 평준화 틀을 고수하려다 보니 온갖 실험이 나오고 그것이 또 다른 교육현장의 왜곡이 되고 마는 악순환(惡循環)을 언제까지 되풀이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