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29·CJ)와 캐리 웹(32·호주)은 미국 LPGA투어에서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다.

동반 라운드를 할 때면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라운드 뒤에도 가볍게 악수만 나눌 정도로 예민한 신경전을 벌이는 '앙숙'이다.

3년 전 나비스코챔피언십 때 동반 라운드하던 도중 웹이 벙커에서 샷을 하는 동안 박세리 부친 박준철씨가 "벙커탈출이 쉽지 않겠네"라고 내뱉자 웹은 자신에게 한 말임을 직감하고 갤러리들이 보는 앞에서 클럽으로 박씨를 향해 치는 시늉을 한 적도 있었다.

'물과 기름같던' 둘은 정상에 있다가 어느날 약속이라도 한듯 나란히 슬럼프에 빠졌다.

웹은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나서 그랬고,박세리는 '명예의 전당 가입요건'을 충족한 이후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인고의 세월 동안 둘은 '동병상련'을 느낀 듯하다.

웹이 지난 3월 첫 메이저대회인 '나비스코챔피언십' 18번홀에서 116야드짜리 이글샷을 성공시키며 부활한 뒤 우연히 박세리와 마주치게 됐다.

인사를 나누면서 박세리는 "이젠 내 차례다.

다음 메이저는 내가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번 메이저대회에서 박세리는 웹을 연장전에서 만났다.

박세리는 연장전에서 201야드를 남겨두고 4번 유틸리티클럽으로 볼을 홀 바로 옆에 떨궈 버디를 낚으며 두 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버디퍼트를 놓친 웹은 박세리를 와락 끌어안으며 '부활'을 축하해줬다.

웹은 경기 후 "당시 박세리가 '다음엔 내 차례'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