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세 < 연세대 교수.경제학 >

그간 발표된 저출산고령화 정부대책을 살펴보면 두 그룹의 철학이 녹아 있다.

경제학자의 오만과 사회복지학자의 편견이 그것이다.

저출산고령화는 여성경제활동의 증가나 양육부담의 가중 같은 경제적 요인에 근거하므로 인센티브만 주면 해결되리라 보는 경제논리가 하나요,국가가 돈을 가득 쌓아놓고 출산육아나 노후보장 문제를 일부러 외면한다고 믿는 사회복지논리가 다른 하나다.

조만간 정부종합대책이 또 발표된다는데 이번에도 아마 그러하리라.

물질적 인센티브 제공이 출산에 미치는 영향은 모호하다.

일본의 획기적 보육지원이나 유럽국가들의 출산지원책은 효과가 없었다.

최근 프랑스가 강력한 조세정책 시행을 통해 출산율을 올리는데 성공하기는 했으나 그에 따른 자원배분의 왜곡과 사회적 부작용도 고민해야 한다.

예컨대 혜택이 아쉬워 출산을 늘리는 계층의 인구비중이 증가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 50%는 북유럽에는 못 미치고 독일 일본 싱가포르와는 비슷한 수준이다.

이들 국가는 완벽한 여권보호 및 사회보장 제도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낮은 출산율을 보인다.

물론 우리의 출산율 1.08명이 그들보다 낮은 것은 사실이나 유의미한 차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일하는 여성들이 직장에서 받는 차별은 심각하며 꼭 시정돼야 한다.

그러나 직장과 가정을 병립할 수 있는 근로환경 조성이 출산율 제고의 충분조건인지는 확실치 않다.

북유럽은 남성역차별 논란이 있을 정도로 여성근로환경이 보장돼 있는데도 저출산으로 몸살을 앓기는 마찬가지다.

저출산의 진짜 원인은 가정이 평가절하된 탓이다.

혼인관의 변화,개인주의의 만연,미혼인구,이혼폭증이 배후에 있다.

절반이 이혼하는 상황에서 평생 족쇄가 될지도 모르는 아이 갖기가 꺼려지는 것이다.

작년 신생아 출산은 43만명에 불과한데 낙태는 35만명에 달한다는 통계가 이를 말해준다.

출산율이 떨어지고 인구가 준다고 나라가 망하는 건 아니다.

노동력의 양적 투입 구조를 개편해 노동의 질을 높이면 생산성의 향상을 통해 삶의 질은 나아질 수 있다.

저출산고령화는 대세다.

정부가 효과도 불확실한 각종 대책에 떼돈을 쏟아붓고 그 재원마련을 위해 세금을 올린다면 재정은 바닥나고 경제는 위축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연금개혁을 통해 재정건전성을 높이고 정부규모를 줄여 나가야 한다.

공적연금 비중을 줄이고 사적저축을 강화해 위험을 분산하고 세대간 부담의 형평성을 높여야 한다.

엊그제 영국이 단행했던 국가연금 수령 연령의 상향조정과 연금저축 의무 가입은 좋은 벤치마킹 사례이다.

고령자의 경제활동 참여를 활성화해야 한다.

수명연장에 맞추어 조기퇴직 유인을 줄이고 연금정년을 연장해야 한다.

그래야 고령자의 퇴직 소득원이 다원화되고 보건의료체제의 비용효율이 높아져 고령화대책의 핵심인 노동정책과 복지정책 간의 보완성이 담보된다.

대개 고령자의 생산성은 임금에 못 미치므로 고용계약의 유연화와 근로형태의 다양화를 통해 기업과 고령자 모두가 '윈-윈'하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노동시장의 경직화를 초래하는 비정규직 계류법안은 고령화시대에 역행한다.

이민정책도 전향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일자리가 없어도 부모에 얹혀살지언정 궂은 일 하기는 싫다면 그 노동력을 해외에서 메우는 수밖에는 없다.

개방적 이민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미국 캐나다 호주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장기 실질소득이 훨씬 크게 증가하리라는 OECD의 예측이 이를 뒷받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