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소파에 기대앉아 TV를 보던 사람이 일어나서 주방 근처까지 갔다 도로 와서 눕는 거예요.

그리곤 '물 좀 갔다줘' 하길래 '일어난 김에 가져오지'했더니 태연한 얼굴로 '나 결혼했잖아'하더라구요.

기가 막혀서 쳐다보는데 왜 그러는지도 모르더라구요.

세상에."

불같은 연애 끝에 결혼한 여성의 얘기다.

다소 오래 된 경우지만 이처럼 사랑만 믿고 혹은 조건만 따져 서로의 가치관이나 사물에 대한 관점 등에 대해 잘 모른 채 결혼하는 일은 지금도 흔하다.

'결혼 전 잠깐'(모니카 멘데스 리히 지음)이란 책을 보면 미국도 크게 다르진 않은 모양이다.

저자는 결혼에 앞서 제발 자신과 상대의 성장배경과 성격,양가 부모와 가족,종교·정치·직업에 대한 관점,소비 스타일과 재정상태,출산 및 미래 계획 등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다른 사람 아닌 스스로에게 한번쯤 물어보라고 강조한다.

그래야 결혼 후 생겨날 수 있는 갈등과 불화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다.

맞벌이를 당연시하면서도 가사와 육아 등 집안일은 아내 몫이라고 여기는 남성이 있는가 하면 능력있는 아내의 성공을 위해 집안일을 자신이 도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남성도 있다.

양성평등이 아닌 양성협조라는 의식 아래 외조의 필요성을 느끼고 실천하는 이들인 셈이다.

성공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트로피남편(잘나가는 아내를 위해 집안일을 책임지는 등 외조하는 남편)이란 말이 생겨난 가운데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아내 힐러리 상원의원의 외조에 힘쓴다는 소식이다.

국내에서도 외조는 이제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한명숙 총리와 김화중 전 보건복지부장관,이혜훈 한나라당 의원,김영란 대법관의 남편은 물론 최고경영자인 아내를 돕는 남편들도 늘어난다.

아이들 교육을 챙기고 공과금을 내는 집안일부터 사업과 정책의 조언까지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조와 외조의 방법은 비슷해 보인다.

자기 식을 강요하지 않고 상대방의 가치관을 존중하고 그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그것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