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인 조직이라면 반드시 한 명쯤은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고수'다. 직책과는 상관이 없다. 그 사람이 있어서 일이 돌아가고 문제가 해결된다. 경영대학원에서 키우려는 인재가 바로 이런 종류의 비즈니스 고수다. 그럴 듯한 다른 용어로는 '문제해결사(problem solver)'라고 한다.

경제 환경이 급변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가장 흔한 실수는 과거의 신념과 경험을 부정하는 일이다. 분명히 쓰임새가 있을 것 같은데도 아날로그의 경험은 왠지 디지털 시대에는 맞지 않을 것 같아 폐기된다.

독일의 월마트라고 불리는 알디(Aldi)는 단순한 믿음으로 세계적인 업체가 됐다. 싸게 만들면 많이 팔 수 있고, 더 싸게 만들기 위해서는 품목을 단순화해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는 믿음을 지금도 견지하고 있다. 월마트가 취급하는 품목은 모두 15만개가 넘지만 알디의 품목은 단 700개에 불과하다. 심지어 '알디 콜라'까지 있을 정도다.

이 회사는 디지털은 물론 전산화와도 거리가 멀다. POS시스템 대신 전자계산기를 컴퓨터의 속도로 다루는 계산원이 있을 뿐이다. 비상장회사이기 때문에 정확한 숫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알디의 자산가치가 5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알디의 성공 뒤에는 '단순하게 경영해야 한다'는 믿음을 놓지 않은 창업주 알브레히트 형제가 있었다. 이들은 '품질을 높이고 가격을 낮추면 반드시 팔린다''빚없이 현금거래를 하면 망하지 않는다'는 몇 가지 원칙을 지켰을 뿐이다. 그들이라고 왜 새로운 경영혁신 시스템 등에 관심이 없었을까. 두 사람은 장사의 성공원리를 일찌감치 깨친 '내공' 깊은 '고수'인 것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이 이런 비즈니스 고수들의 '내공'에 주목한 것은 벤처거품이 극에 달했던 2000년께다. 프로젝트의 이름은 '딥 스마트(Deep Smarts)'였다. 영리한(smart) 것을 넘어 진정으로 비즈니스 정수에 도달한 고수들이 보이는 '내공'의 특징은 무엇일까,그리고 그런 공통점은 과연 시대와 상관없이 성과를 보장하는가가 그들의 관심이었다.

도로시 레너드,월터 스웝 등 두 연구자는 그 공통점을 찾아냈다. '딥 스마트'는 학력이나 IQ,연령,인종,성별과는 큰 연관이 없었다. 다만 오랜 경험을 통한 깊은 성찰,그리고 좋은 스승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함께 있을 때 창조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문제는 이런 것들이 배우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스스로 경험하면서 내적 성찰을 통해 창조해나가야 하는 것이 바로 이런 '내공'이라는 얘기다.

'딥 스마트'가 새로운 의미를 주는 것은 전략도 중요하고 마케팅도 빼놓을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그 실천의 주체인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최근 수년 사이 경영의 논리가 바뀌고 변화가 빨라지면서 가장 경시된 것이 이런 인재들의 경험과 노하우였다. 시장이 변했다는 이유로 아날로그 시대의 인물들과 그들의 '딥 스마트'는 잊혀졌다. 저성장의 늪에 빠져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의 한계는 어쩌면 이런 비즈니스 고수들의 경험을 밖으로 내친데 있는 건 아닐까.

신입사원,경력사원,핵심인재뿐만 아니라 잊혀진 '고수'들을 다시 찾아쓰는 기업의 인적자원관리가 절실하다는 생각이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