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은 24일 "기업들에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권유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권 위원장은 이날 한국경제신문 현대경제연구원 공동 주최로 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경 밀레니엄 포럼'에서 "지주회사 제도는 잘못 적용되면 기업들의 복잡한 지배구조를 합리화 시키는 쪽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학계 전문가와 금융인·기업인 등으로 구성된 포럼 회원들은 "시장경제 선진화를 위해서는 경쟁원칙을 확립해야 한다"는 권 위원장의 지론에 대해서는 공감을 나타냈으나 우려도 없지 않았다.

특히 공정위의 대규모 기업집단 정책이 자칫 세계화 시대에 기업들의 경쟁력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김종석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우리나라의 공정위는 그간 '경제검찰'로 불리면서 권력기관화했었다.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검찰 경찰 국세청과 함께 공정위가 사정기관처럼 여겨지는 것은 공정위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은 현상이 아니다.

공정위는 경제부처이고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

◇권 위원장=공정위는 '경제검찰'일 뿐 아니라 '경제법원'이기도 하다.

거기에다 정책을 수립하는 정책부서다.

법 집행 기능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이것만 갖고는 안된다.

기업인과 사회 전체에 경쟁질서 하나는 바로잡아야 한다는 인식이 확립됐으면 한다.

그렇게 되면 기업들이 불편해 하는 나머지 것들은 가능한 한 풀었으면 한다.

◇김 교수=참여정부 들어 시장기능보다는 정부의 직접 개입을 통한 문제 해결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한 경쟁을 통한 시정질서 확립이라는 공정위의 정책 목표가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상생 문제에서도 자발을 가장한 암묵적인 강요가 공정위 주도로 도입되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경쟁질서 확립 최우선

◇권 위원장=시장경제가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시장 실패는 정부가 보완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상생협력은 시장원리로 볼 수 있는 측면과 그렇게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두 가지를 어떻게 조화시켜 나갈지 고민하겠다.

◇이석연 변호사=강철규 전임 공정거래위원장은 출자총액제한제도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기업의 '출구'를 제한하는 출총제는 위헌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에 일단 폐지해야 한다.

그렇게 하고 나서도 문제가 생기면 '출구'를 막을 게 아니라 내부로 들어가서 수술하는 게 바람직하다.

◇권 위원장=출총제는 상당히 문제가 많은 제도다.

순환출자의 폐해를 막기 위해 '출구'를 막는 것은 대단히 거칠고 잘 다듬어지지 못한 제도다.

그러나 출총제가 문제가 많다는 것과 위헌이냐 여부는 별개다.

◇허노중 SK경영경제연구소 고문=공정위는 지금까지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권장해 왔다.

지주회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말해 달라.

◇권 위원장=기업들에 지주회사 쪽으로 가라는 얘기는 안할 생각이다.

기업들이 알아서 판단할 문제다.

지주회사도 완벽한 제도는 아니기 때문에 잘못하면 복잡한 지배구조를 합리화시켜주는 제도로 악용될 수 있다.

◇김중웅 현대경제연구원 회장=경제시스템 선진화를 공정위의 정책목표로 삼았는데,현재 공정위의 정책 판단 기준은 세계화돼 있지 않은 것 같다.

세계 시장이 갈수록 통합돼 가는 상황에서 현재 공정위가 적용하고 있는 대규모 기업집단 기준이 적절한지 의문이다.

◇권 위원장=세계화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은 국내 시장이 기준이다.

국내 시장이 경쟁적이어야 기업들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시장을 무조건 넓게만 보면 잘 나가는 기업만 봐준다는 오해가 있을 수 있다.

◇최흥식 금융연구원 원장=금융 통신 등의 산업은 해당 규제당국과 공정위 두 곳의 감시를 동시에 받아야 한다.

문제는 각 규제당국과 공정위 간의 업무 경계가 명확하지 않고 경우에 따라 상충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앞으로 어떻게 해결해 나갈 생각인가.

산업 이중규제는 없어야

◇권 위원장=공정위도 금융 통신 등 일부 산업이 이중 규제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를 관련 시장으로 볼 것인가가 시장 지배적 사업자를 판단하는 기준인데 이 부분은 공정위가 맡고,이 사업자가 지위를 남용하는지 여부는 규제당국과 공정위가 모여서 같이 하면 될 것 같다.

◇이상만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경쟁을 통해 시장 질서를 확립하는 것도 좋지만 그 과정에서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켜서는 곤란하다.

시장을 왜곡시키는 건 기업보다 정부다.

◇권 위원장=기업이 아무 잘못 없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어느 나라든 경쟁질서를 해치는 것은 정부라는 얘기가 있는데 사실 맞는 측면이 있다.

정치권도 경쟁질서가 기본질서라는 것을 인식하고 도와줘야 한다.

◇문정숙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공정위도 이제 법학이나 경제 전문가들을 적극 영입할 필요가 있지 않나.

◇권 위원장=공정위도 전문성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최근 대법원에 부장판사 두 분만 파견해 달라고 요청해 승낙을 받았다.

그렇게 되면 법리적 전문성은 보강될 것이다.

경제적 전문성은 경제학자들의 의견을 열심히 들어 정책에 반영할 생각이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