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 < IT 부장 >

정보통신부 노준형 장관과 유영환 차관은 금주에 잡아놓은 약속을 대부분 취소했다.

'월드 ICT 서밋 2006' 참석차 방한하는 외국 장·차관 17명 중 16명이 면담을 요청해왔기 때문이다.

정통부는 4,5년 전만 해도 통사정해도 오지 않던 장·차관들이 몰려오고 면담시간을 내달라고 졸라대자 내심 흐뭇해 하고 있다.

이들이 정통부 장·차관을 만나려고 줄을 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국 BBC가 최근 3부작으로 방영한 'IT 코리아' 특집 프로그램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BBC는 휴대인터넷 시범 서비스,미니홈피 문화,온라인게임 열기,인터넷 시민 저널리즘 등을 소개하며 '한국에서 IT 혁명이 진행 중'이라고 소개했다.

아마 이 '혁명'에 관해 듣고 싶을 게다.

정통부는 이들에게 월드컵을 이동멀티미디어방송(DMB)과 인터넷으로도 중계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한다.

한국팀 경기는 집에서 디지털TV로 보고,경기 하이라이트는 지하철에서 휴대폰으로,외국팀 경기는 인터넷 동영상으로 즐길 것이라고 자랑하려고 한다.

월드컵을 TV·DMB·인터넷으로 '삼원중계'하는 나라는 사실상 한국뿐인 만큼 자랑할 만도 하다.

하지만 이런 정통부도 '방통융합'이란 말만 나오면 고개를 떨구고 한숨만 내쉰다.

해놓은 것도 없고 '갈길'도 험하기 때문이다.

방통융합 법제 정비가 대통령 선거공약인 데도 3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방송업계가 융합 서비스 도입에 강력히 반발했기 때문이다.

총리실 주도로 해결방안을 찾기도 했지만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방통융합은 말 그대로 방송과 통신의 융합을 말한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방송과 통신의 경계는 거의 사라졌다.

텔레비전에 인터넷을 연결하면 방송과 통신을 구분하는 게 무의미해진다.

누구든지 동영상을 제작해 인터넷에 올릴 수 있고 남이 올린 동영상을 텔레비전으로 시청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기술이 제도 미비로 상용화되지 못하고 있다.

통신업계는 하루라도 빨리 방통융합 신기술을 상용화하고 싶어한다.

반면 방송업계는 통신자본에 먹히거나 수많은 콘텐츠 공급자 중 하나로 전락할까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나 방통융합은 시기를 늦춘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인터넷TV(IP-TV)를 비롯한 방통융합을 막으면 외국 통신망을 이용해 한국 콘텐츠를 이용하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

IT업계에서는 '졸면 죽는다'는 말이 오래 전에 정설이 됐다.

CD플레이어를 삼킨 MP3플레이어가 뮤직폰에 먹히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그런데 우린 3년이나 졸았다.

기술은 앞에서 달리는데 제도는 뒤에서 헉헉대고 있다.

이젠 더이상 늦출 여유가 없다.

방송업계와 통신업계의 입장을 충분히 청취한 만큼 상생을 전제로 일을 진척시켜야 한다.

총리실이 새 조직을 만들어 방통융합을 다시 추진한다니 반가운 일이다.

걱정스러운 점이 없지 않지만 이번 만큼은 확실하게 끝내주길 기대한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외국 장·차관들이 한국 정통부 장·차관 만나려고 줄 서는 일은 사라질 것이다.

방통융합 법제 정비가 다시 대통령 후보 선거공약으로 등장하는 날엔 우리는 'IT 코리아'간판을 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