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DVERTISEMENT

    [취재여록] 외국인 행장의 출근투쟁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지난 17일 오전 8시30분께 출근 인파로 붐비던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앞에 진풍경이 벌어졌다.

    리처드 웨커 외환은행장이 연좌농성을 벌이는 70여명의 노동조합원들 앞에 돗자리를 펴고 마주 앉은 것이다.

    국내 금융사상 초유의 '외국인 행장의 출근투쟁'이었다.

    웨커 행장이 입을 열었고 행장 옆에 죄인처럼 꿇어앉은 여성 통역이 말을 전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행장도) 지금과는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바랐습니다.

    내부 분열은 조직을 더욱 약화시킬 뿐입니다." 하지만 메아리는 없었다.

    돌아오는 것은 노조의 무거운 침묵 뿐이었다.

    돗자리 위에서 대치하던 웨커 행장은 결국 "여러분은 대화를 원치 않는 것 같다"는 말을 남기고 10여분 만에 떠났다.

    노조는 국민은행으로의 매각진행에 반대하며 은행장에게 요구사항을 전달했으나 답변이 없다는 이유로 지난 12일부터 행장 출근 저지투쟁을 벌이고 있다.

    웨커 행장은 18일에도 출근을 시도했으나 무산돼 4일째 출근을 못하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외환은행 내분은 이미 예고된 수순이었다.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는 의혹으로 얼룩져 있다.

    이런 '원죄' 속에서 국민은행으로의 재매각 절차가 순탄할리 없다.

    그 과정에서 웨커 행장이나 외환은행 직원들은 모두 피해자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다.

    웨커 행장은 론스타가 외환은행 경영정상화를 위해 고용한 '전문 경영인'이다.

    은행매각 문제에 관한한 운신의 폭이 없다.

    멀쩡하다고 믿던 은행이 하루아침에 해외펀드에 넘어가고 다시 국민은행에 팔려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외환 직원들의 참담한 심정도 헤아리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돗자리 위에서 노조와 대치하며 출근투쟁을 벌이는 외국인 행장의 모습은 과연 국제 금융계에 어떻게 비칠까.

    한국 금융제도나 관행의 후진성을 대변하는 장면으로 각인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21세기 생존 키워드로 '동북아 금융허브'를 지향하는 나라에서 말이다.

    더이상은 볼썽 사나운 장면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병연 금융부 기자 yooby@hankyung.com

    ADVERTISEMENT

    1. 1

      [토요칼럼] 혈액난 부추기는 '헌혈 정년'

      전남 장성에 사는 김병구 씨, 제주에 사는 김광선 씨, 서울에 사는 신진용 씨…. 최근 몇 년 새 생의 마지막 헌혈을 한 기증자들이다. 수시로 찾던 채혈용 의자와 올해 1월 아쉽게 작별한 신씨는 그간 3...

    2. 2

      [사설] 혼란만 키운 노란봉투법 시행 한 달…보완 서둘러야

      어제로 개정 노동조합법 2·3조(노란봉투법)가 시행 한 달을 맞았다. 입법 단계부터 제기됐던 ‘노사관계 질서를 뿌리째 흔드는 대혼란’이 빚어질 것이란 우려가 결국 현실이 됐다. 노동...

    3. 3

      [부고] 김원삼(제주항공 홍보팀장)씨 부친상

      ▶김기문 씨 별세, 김원하·김원권·김원삼(제주항공 홍보팀장)·김미혜씨 부친상, 박경인·윤소정·강민정(NH농협금융지주 ESG상생금융부 팀장)씨 시부상 = ...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