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에 있는 한 시중은행 낙성대 지점.중국 증시에 투자되는 해외펀드를 권하며 상담에 나선 K대리는 고객 입장에서 기자가 던진 첫 질문에서 쩔쩔매기 시작했다.

"추천하신 상품의 수익률이 어떻게 되나요?"

"수익률은,어 글쎄…."

이 은행이 밀고 있는 대표 상품의 수익률 자료를 찾지 못해 헤매던 그는 결국 선배인 L과장에게 'SOS'를 요청했다.

"과장님,우리 지점에서 파는 차이나펀드 수익률은 어디서 찾아볼 수 있지요."

이렇게 허둥대기를 10여분.가까스로 해당 차이나펀드 자료를 찾아낸 K대리에게 "자료 속에 나오는 '위험도'가 무슨 의미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다시 5분여간 컴퓨터를 검색하더니 "위험도가 높을수록 손해볼 확률이 높다는 것"이라며 "손님 덕분에 많은 것 배운다"고 머쓱해했다.

부자고객이 많이 사는 강남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한 시중은행의 도곡동 지점.미래에셋이 운용하는 인디아솔로몬주식형 펀드를 추천하는 직원에게 "일본 관련 펀드는 없냐"고 묻자 "있기는 하지만 일본 쪽은 잘 모른다.

상품 내용이 거의 다 비슷하니 일본이나,인도나 거기서 거기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해외펀드의 판매잔액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해외펀드에 대한 은행원들의 지식이 '낙제점'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창구 직원들이 해외펀드 판매의 기본 중 기본인 상품수익률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고객 손실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투자국 사정도 모르는 밀어내기식 영업

상당수 은행원은 고객의 선택권은 아예 고려하지 않은 채 계열 자산운용사에서 운용하는 해외펀드만을 권하기 일쑤다.

자신들의 판매실적을 늘리기 위해서다.

한 시중은행 사당동지점 관계자는 "우리야 신상품 위주로 판매에 주력할 뿐이고,선택은 고객이 하는 것"이라며 "은행에서 판매하는 신상품은 손실 위험은 없으니 고객은 그저 직원들이 추천하는 대로 따라오면 된다"고 말했다.

해당 펀드가 투자되는 지역의 시장 상황에 대한 지식도 전무했다.

한 국책은행 서초구 방배동지점에서는 "판매하고 있는 상품이 주로 어떤 종목에 투자되느냐"는 질문에 "일본은 도시바 같은 정보·통신 업종일 테고,중국 쪽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 지점 관계자는 "펀드 해서 손해본 사람 없다.

'손해봐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한 달에 15만원씩 적립식으로 부으면 될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한 시중은행 프라이빗 뱅킹(PB) 센터장은 "고객 한 명에게 14∼15개 해외 펀드를 가입시킨 PB 팀장도 있다"며 "아무리 분산 투자 차원이라고는 하지만 이 정도면 센터장 입장에서도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VIP 고객 외엔 서비스 전무실정

"상품 판매직원의 역량이 불붙는 해외펀드 투자를 따라가지 못해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국내 주식형 펀드와 마찬가지로 해외펀드 판매시장 역시 은행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말 현재 해외 자산운용사가 외국에서 설정하는 역외펀드(해외 뮤츄얼펀드)의 순자산가치(설정액+수익) 기준 판매잔액은 7조9646억원에 달했다.

이는 작년 말 대비 23%가 증가한 것.이 가운데 은행들이 판매하고 있는 비중은 5조9491억원으로 전체의 74%를 차지했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해외펀드는 국내 주식형 펀드에 비해 일반 투자자들이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없어 환매 시기 등에 대해 조언을 받는 게 중요하다"며 "하지만 요즘 은행에서는 프라이빗 뱅킹(PB) 고객 등 VIP 위주로만 관련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어 서민들의 피해가 우려되는 게 사실"이라고 실토했다.

일부 은행의 PB 점포가 아닌 일반 점포에서는 아예 해외펀드 판매 한도를 500만원으로 정하는 방식으로 불완전 판매의 위험도를 낮추고 있지만 이 같은 방식의 경우 고객들의 재산 증식 기회를 소득 수준에 따라 차별화한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도 있다는 지적이다.

송종현·김유미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