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이 24일 검찰의 비자금 조성 및 경영권 편법승계 비리 의혹 사건 수사와 관련해 28년만에 검찰에 출두했다.

현대차그룹은 검찰의 강경 입장에 따라 정 회장의 이번 출두가 그에 대한 구속으로까지 이어질 경우 향후 '경영 공백'으로 인해 그룹 경영에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우려하면서 '최악의 상황'만은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현대차그룹 '공황' 상태..최악은 피해보자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이 이날 검찰에 출두하자 크게 술렁이며 마치 '공황'(恐慌)상태에 빠져 있는 분위기다.

현대차그룹 임직원들이 이날 출근 이후 삼삼오오 모여 정 회장의 검찰 출두와 향후 전망 등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TV를 통해 출두 장면을 시켜보면서 크게 술렁이는 모습이다.

현대차그룹의 한 관계자는 "설마했는 데 정 회장의 검찰 출두 장면을 지켜보니 걱정이 앞서고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며 "무엇보다 향후 그룹 경영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또 일단 정 회장이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게 됐지만 향후 '최악의 상황'만은 피해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를 위해 무엇보다 정 회장 공백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먼저 정 회장이 구속될 경우 최근 기아차의 미국 조지아공장과 현대차의 체코 공장 착공식이 연기된 것처럼 해외사업에 차질을 빚어 현대.기아차뿐 아니라 협력업체들도 심각한 경영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게 현대차그룹의 입장이다.

또 세계 시장에서 선진업체들과 회사의 존망을 걸고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정 회장이 자리를 비울 경우 의사결정이 지연됨으로써 사업에 추진력이 떨어지고 결국도태될 수 밖에 없다는 논리다.

현대차그룹은 이 처럼 정 회장이 단순한 '오너'가 아니라 경영 현장과 의사결정을 관장하는 '직접 경영자'인 점을 들어 과거 'SK사태'에 견줘 수사가 진행될 경우 심각한 경영 위기가 초래되는 것은 물론 경영권 공격을 당하고 8천여억원의 국부가 유출된 '소버린 사태'와 유사한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도 역설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 밖에 최근 현대.기아차의 부품공급 협력업체 모임인 현대.기아차협력회가 전국 1천800개 업체 임직원 5만명이 서명한 탄원서를 검찰에 제출, '선처'를 호소하고 해외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해 정 회장에게 관용이 베풀어질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도 걸고 있는 상태다.


MK, 28년만의 검찰 출두

현대차그룹 등에 따르면 정 회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에 출두하는 것은 1978년 이후 28년만이다.

그는 32세 때인 1970년 현대차 서울사업소장으로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 현대건설 자재부장과 현대차 이사 등을 거쳐 1974년 현대자동차써비스 사장으로 경영전선에 뛰어든 지 4년만에 처음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당시 한국도시개발공사(현 현대산업개발) 사장이던 정 회장은 1977년 서울 압구 정동 현대아파트에 대한 공직자 및 언론인 특혜분양 사건과 관련해 이듬해 고(故)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함께 조사를 받았고 결국 뇌물수수와 특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그는 이 사건과 관련해 80년 11월 고법과 81년 4월 대법원에서 결국 뇌물죄는 무죄를 받고 건축법 위반에 대해서만 징역 6월 벌금 500만원에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지만 1심 재판때까지 75일간 구금되는 시련을 겪었다.

이는 정 회장이 검찰 수사로 경험한 처음이자 유일한 시련이었다.

정 회장은 또 2000년 3월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둘러싼 '왕자의 난'으로 형제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내홍 '(內訌)을 겪었지만 현대.기아차그룹을 얻었으며, 2004년에는 1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해 대선자금으로 전달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김동진 총괄부회장이 책임을 진 덕분에 검찰 소환조사나 사법 처리를 면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이 같은 시련을 딛고 이후 자동차와 철강을 중심으로 한 과감한 투자와 사업 확장 등 공격적인 경영을 펼쳐 현대차그룹을 출범 당시 재계 5위에서 2위까지 끌어올리고 해외에서는 '2010년 글로벌 톱5'를 목표로 할 정도로 도약시킴으로써 승승장구해 왔다.

이에 따라 정 회장은 검찰의 이번 수사로 인해 생애 최대의 위기에 처해 있으며, 현대차그룹도 자칫 '경영 공백'으로 인해 경영이 좌초될 수 있는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상황을 맞고 있는 셈이다.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aupf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