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플로리다스내추럴채리티챔피언십에서 '역전불허'의 명성을 쌓아온 '골프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에 역전 우승을 거둔 임성아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될 성 부른 떡잎'이었다.

국가대표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땄고 프로 언니들을 제치고 오픈대회 우승을 차지하는 등 화려한 아마시절을 보냈고 프로 전향 3년만에 LPGA 투어에 입성, 2년만에 정상을 밟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재미삼아' 골프에 입문한 임성아는 '여자골프 사관학교'로 불리는 세화여중, 세화여고을 거치며 기량이 급성장했다.

대한항공 기장으로 일하던 부친 임용원씨가 집을 자주 비우는 바쁜 직장생활에도 딸의 뒷바라지에 헌신했던 덕이기도 했다.

1999년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선발되면서 서서히 이름을 알린 임성아가 박세리와 김미현 등 한국여자골프 간판들의 후계자로 떠오른 것은 2001년.
그해 한국여자오픈에서 공동 7위에 오른 데 이어 한국여자프로골프 타이거풀스토토오픈에서 쟁쟁한 프로 선수들을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해 골프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더구나 임성아는 당시 1라운드부터 최종 라운드까지 한 번도 선두를 내주지 않는 완승을 거둬 '대형 유망주' 탄생을 알렸다.

이에 앞서 임성아는 한국 아마골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한국아마추어여자골프선수권대회를 제패했고 2001년을 '임성아의 해'로 만들었다.

이듬해 세화여고 동기생인 김주미(22.하이트맥주) 등과 함께 출전한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임성아는 단체전 금메달을 합작했고 프로테스트 면제혜택을 받아 2003년 프로에 뛰어 들었다.

그러나 화려하기만 했던 아마추어 때와 달리 프로의 높은 벽은 쉽게 넘지 못했다.

XCANVAS여자오픈 공동 4위가 최고 성적이었을 뿐 동기 김주미가 상금왕, 다승왕, 신인왕을 휩쓰는데 들러리를 섰고 동갑내기 안시현(22)의 신데렐라 탄생 현장은 TV로만 봐야 했다.

2004년 2부투어를 통해 진출한 미국 무대로 녹록지 않았다.

'톱 10'에 8차례나 들었지만 상금순위로는 LPGA 투어에 오르기는 모자랐다.

2004년 겨울 LPGA 퀄리파잉스쿨을 공동 10위로 합격해 2005년 루키 시즌 역시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공동 3위 한 차례를 포함해 '톱 10'에 네 차례 이름을 올려 상금랭킹 43위(28만7천달러)라는 성적표는 만족스럽긴 했지만 한국여자골프의 대표적 스타 플레이어가 되기엔 부족했던 것.
더구나 2명의 메이저 챔피언을 비롯해 8명의 한국 선수 우승자가 쏟아진 탓에 작은 관심조차 받기 어려웠다.

올해 개막전에서 동기 김주미가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할 때 공동 8위를 차지한 그는 마침내 LPGA 챔피언 대열에 합류하면서 진가를 발휘했다.

163㎝, 60㎏의 당당한 체격에서 뿜어나오는 평균 240야드의 드라이버샷이 장기 이며 아이언샷도 일품이다.

아직 쇼트게임을 더 다듬어한다고 자평하고 있으며 미국 그린에 대한 적응이 아직 완벽하지 못해 퍼팅 실력 보완도 급선무라는 평가다.

(서울연합뉴스) 권 훈 기자 kh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