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세상을 의심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유명한 명제도 부정의 산물이었다.

의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함으로써 결코 의심할 수 없는 진리에 도달한다는 새로운 인식론.당시까지 절대적이었던 '신의 뜻'을 거부하고 '나'라는 1인칭을 전면에 내세운 인간 의식의 혁명이었다.

이러한 회의적 사유는 그가 평소 즐기던 도박에까지 이어졌다.

데카르트가 좋아했던 게임은 브리지나 포커 같은 것들이었다.

종교적 이단 혐의로 체포될 위험성이 컸으므로 변장한 채 파리 도박장에 잠입하곤 했는데,여기에서의 승부수 역시 '타인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권하는 노하우를 의심하고 다수의 목소리에 흔들리지 않았다.

이 베팅이 효과가 있었는지 집으로 향하는 그의 가방은 늘 돈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항상 반문하는 자세가 도박사로서도 성공하게 만든 것이다.

'스위스 은행가가 가르쳐주는 돈의 원리'(막스 귄터 지음,송기동 옮김,북스넛)는 기존의 재테크 상식과 격언을 철저히 뒤집는다.

예를 들어 '분산 포트폴리오의 유혹에 말려들지 마라' '잃어도 좋은 돈만 투자 대상은 아니다'는 충고는,리스크에 맞서지 않으면 언제나 현상유지일 뿐 고액 납세자 대열에 절대 낄 수 없다고 볼 때 선정적이지 않다.

또 '사람들이 주식을 사지 말라고 할 때야말로 진짜 살 타이밍'이란 주장도 투자자들의 관심이 멀어질수록 주가는 더 크게 떨어진다는 점에서 패러독스만은 아니다.

'장기 투자는 엉터리 환상만 키운다'는 대목을 보자.'현재를 연장하면 미래가 보인다는 발상은 위험하다.

돈을 묶어두지 마라.한번 실패하면 모든 것을 잃는다.

기회가 보이면 나아가고,위기가 오면 도망쳐야 한다.

모든 투자는 최소한 3개월마다 재평가돼야 한다.'

13살부터 주식 투자를 했다는 저자는 차트 분석가에게도 우호적이지 않다.

경험상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으며,돈이 움직이는 세계에서 질서란 없다고 말한다.

'증시에는 패턴이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반복되는 일은 없다.

주가를 차트로 그리는 것은 바다의 파도거품을 표현하는 것과 같다.

사기꾼이나 거짓 예술가,세일즈맨들은 이런 그림의 힘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이용해 왔다.'

이 책은 자산 축적과 관리에 일가견이 있다는 스위스인 사이에 입소문으로 통하던 지침들을 정리한 것이다.

노트 복사본으로 만들어져 월가의 금융 거물들 사이에 유통되기도 했다.

아홉 번 성공하고도 한 방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하수가 되지 않고 아홉 번 잃어도 한번 크게 대박을 내는 고수가 되려는 사람에게 유용하다.

특히 '월급으로 부자가 된 사람은 없다'는 말에 공감한다면 충분히 '판돈'을 걸 만한 책이다.

277쪽,1만1000원.

김홍조 편집위원 kiru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