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경 < 인제대·백병원 재단본부장 skpaik@inje.ac.kr >

학회가 있어서 한 대학병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일을 마친 후 주차장을 나오며 학회에서 구입한 할인 주차권을 주었더니 주차 요원이 병원에서 받은 것이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쓸 수 없다고 요금을 다 내라고 하는 것이었다.

병원과 학교가 한 울타리 안에 있는데 무슨 이야기냐고 했더니 두 곳의 주차관리 회사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 직원은 매우 공손하고 친절하게 화를 내는 나를 달랬다.

"선생님, 뒤에서 기다리는 분들이 많으니 돈 내고 나가시고 병원측에 항의하시지요." 이런 불만을 많이 겪어 본 솜씨였다.

뒤에서 짜증 섞인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운전자들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주차 요금을 내고 나오면서 정말 기분이 나빴다.

당장 그 병원 사이트에 항의의 글을 올렸더니 며칠 후 다음과 같은 답변이 왔다.

"저희 직원의 잘못으로 불편을 끼쳐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선생님께서 내신 주차 요금은 돌려 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주차관리 직원의 친절 교육을 더욱 철저히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이 문제는 직원이 불친절해서 생긴 게 전혀 아니다.

잘못된 시스템으로 고객을 골탕 먹이면서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내가 그 병원 게시판에 불만의 글을 쓴 이유는 나도 병원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고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주차 관리가 고쳐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지 요금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마치 아파서 우는 아기에게 치료는 해 주지 않고 사탕을 주어 울음을 그치게 하는 꼴이다.

고객을 일선에서 직접 만나는 직원들은 대부분 관리자가 아니라 실무자들이다.

그들에게 친절 교육은 많이 하고 있지만 고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작은 권한을 주는 것에는 인색하다.

아무리 상냥하고 고객 마인드가 투철한 직원이라도 자신에게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다면 아무 소용 없다.

고객의 불평불만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고객의 쓴소리는 통증과 같다.

암이 두려운 이유는 아프지 않기 때문이다.

불만을 터뜨리는 고객은 우리 조직의 부족한 점이 암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조기 발견, 조기 치료할 수 있도록 경고해 주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홈페이지 게시판이나 전화, 팩스, 이메일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더욱 많은 쓴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열어 놓고 이를 신속히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조직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