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모 <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

프랑스정부의 최초고용계약법(CPE) 도입시도는 결국 무산됐다.

최초고용계약법의 핵심은 기업이 26세 미만의 청년을 채용하면 2년 동안에는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프랑스 정부의 이러한 시도는 경제성장률 2%,실업률 9%,청년실업률 22.8%의 경제위기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극약처방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프랑스 신고용법 사태의 과정을 통해 규범적인 논쟁보다는 앞으로의 우리 노동정책에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교훈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프랑스 사례는,노동시장 시스템 개혁 없이 보조금에 의존하고 노동법 규제를 완화하는 데에 중심을 둔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은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는 시사점을 준다.

OECD 자료(2004년)를 보면,프랑스는 노동정책 지출액에서 실업보조금과 고용보조금이 64.7%를 차지해 OECD 국가 중 높은 수준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국가그룹에 속한다.

반면 취업알선 서비스 및 직업훈련 지출 비중은 13.4%로 노동시장 성과가 양호한 네덜란드의 24.7%,덴마크의 21.2%보다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대체로 노동경제학자들은 보조금 지급은 단기적인 효과는 있지만 사중손실(dead-weight loss),횡재효과 및 구축효과 등 노동시장의 부작용을 유발하는 정책으로 평가하고 있다.

반면 취업알선 서비스 및 직업훈련 체계와 같은 노동시장 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단기 효과는 적지만 장기적으로 노동시장 효율성 제고효과가 크다고 평가한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해 프랑스 정부가 취한 정책내용을 살펴보면 노동시장 시스템 개혁보다는 주로 보조금 지급을 비롯해 최초고용계약,신규고용계약(CNE) 등 몇가지 해고규제 완화와 같은 미봉책에 의존했다.

노동시장 유연성을 위해서는 노동시장 시스템 개혁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프랑스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또 한가지 시사점은 한번 만들어진 노동 관련법은 좀처럼 고쳐지기 어렵다는 진리를 새삼 일깨워 준다.

정부가 아무리 좋은 법을 만들어도 이익집단들이 국회 앞에서 시위 농성하고 재선에 몰입하는 정치인들이 '입법내용 물타기' 혹은 '임기내 입법 표류시키기'에 나서는 것은 지구촌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정치게임이다.

프랑스 사태는 노사관계 선진화 로드맵 등 노동 관련법의 국회 입법 논의를 앞둔 우리나라에 주는 시사점이 매우 크다.

과도한 입법은 환경변화?노동법 개정시도?이익집단의 반발?노동 악법의 고착화란 악순환 고리의 단초를 제공한다는 점을 프랑스 사태에서 발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모든 입법에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입법효과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프랑스의 경우 20인 이하의 소기업에서 해고제한을 완화한 신규고용계약 입법 당시인 2005년 9월만 해도 노동조합의 저항은 있었지만 범국민적 반발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신규고용계약 통과 이후 자신감을 얻은 프랑스 정부는 교외지역의 비학위취득자를 위한 법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초기 입법논의부터 최초고용계약의 적용대상을 비학위취득자로 명확히 설정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 됐다.

결국 이 법안 자체가 자신들 모두에게 적용될 것이라고 반발한 프랑스의 대학생 조직들이 파리뿐만 아니라 지방 곳곳에서 들고 일어난 것이다.

근래의 세계 노동운동사에서 노동계와 청년계 연대는 극히 드문 일이다.

대체로 노동시장 외부자인 청년계는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을 노동시장 진입의 애로요인으로 보고 충돌하는 사례가 더 많았다.

따라서 프랑스 사태에서 노청연대는 프랑스 정부의 입법전략 부재로 인해 형성된 측면이 강하다.

아무리 좋은 법일지라도 그 내용과 범위를 명확히 하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입법의 필요성에 대해 국민적 신뢰를 형성해 가야한다는 입법 정도(正道)를 새삼 일깨워 준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