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의 '눈동자',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그 겨울의 찻집''큐(Q)',박인수·이동원의 '향수',양희은의 '하얀 목련',최진희의 '사랑의 미로''물보라',임주리의 '립스틱 짙게 바르고',문주란의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김국환의 '타타타',이선희의 '알고 싶어요'.

누구라도 알 만한 이들 노래의 공통점은? 답은'작곡가 김희갑씨(70)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어떤 일에서든 '반짝'하는 사람은 더러 있지만 한 분야에서 꾸준히 빛나는 역량을 발휘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1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김희갑 음악인생 40년 헌정공연'이 눈길을 끈 것은 그런 까닭이다.

김씨는 기타리스트이자 밴드 대표로 미8군 무대에서 연주하다 1960년대 중반 작곡가로 데뷔했다.

'눈동자'를 비롯한 히트곡을 내면서 가요 작곡에 힘쓰다 70년대 후반 이후 한동안은 영화음악에 주력했다.

가요에 다시 손댄 건 아내인 작가 양인자씨를 만나 결혼하면서부터.앞에 열거한 노래 대부분이 양씨가 작사한 것들이다.

시인이 아닌 소설가가 가사를 써서였을까.

이후 김씨가 만든 곡은 이전의 우리 가요와 많이 다르다.

'킬리만자로의 표범'만 해도 자그마치 1000자가 넘는 가사를 소화하느라 앞부분이 랩에 가까운 독백으로 처리됐다. 그런가 하면 정지용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향수'는 성악가와 가수가 함께 부르는 색다른 형식으로 이뤄졌다.

새롭고 파격적인 가사에 곡을 붙이느라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음을 자유로이 넘나들었다는 것이다.

"음악밖에 모르는 말 없고 무뚝뚝한 사람"이라는 김씨의 변신은 끝이 없다.

90년대엔 뮤지컬 음악 제작에 몰두,'명성황후''몽유도원도'등을 만들어냈다.

가요 영화음악 뮤지컬 등에서 수많은 히트작을 창출한 비결로 그는 네 가지를 꼽는다.

'곡을 의뢰 받으면 두 배로 써서 절반은 버리고,선곡은 제작자에게 맡기고,이전의 멜로디는 잊고,같은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가 들어도 우리 노래다 싶은 음악의 뿌리를 만들고 싶다는 작곡가의 명언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