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사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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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남만 아니면 확 잘라버릴 텐데." 얼마 전 작고한 김형곤씨의 히트작 '회장님 회장님,우리 회장님'에 나오던 대사다.
프로그램 속 회장님은 임원들 앞에서 마구 큰 소리치다가도 부인 전화만 받으면 수화기를 두 손으로 부여잡는 등 고양이 앞의 쥐처럼 벌벌 떨어 보는 이를 웃게 만들었다.
풍자개그가 공감을 자아내는 건 현실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장님 부인은 회장님'이라는 우스갯소리는 남편의 지위를 이용,자신이 마치 그 자리 혹은 그보다 더한 위치에 있는 양 행세하는 부인들을 두고 생겼을 것이다.
남편의 힘을 믿고 거들먹거리는 '사모님'을 비꼰 말인 셈이다.
사모님의 위세를 전하는 일화는 많다.
도지사 부인이 도내 시군 시찰에 나서자 대접을 위해 고민하던 군(郡)에서 공사중이던 민간호텔을 빨리 짓도록 독촉해 숙소를 마련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지사 부인이 관사에서 매월 도내 시장과 군수 부인 모임을 주재하자 서로 특산품 내지 맛있는 걸 가져가느라 경쟁했다는 얘기도 있다.
세상이 변한 만큼 사모님들의 '폼 잡기'도 사라질 법하다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부산 시장 부인이 공무원을 개인비서로 두고 관용차를 사적으로 썼다고 해서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를 비롯한 다른 광역단체에서도 비슷한 일이 이뤄져 왔다고 한다.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클린턴 정부 시절 재무장관을 지낸 로버트 루빈은 장관을 그만두면서 "뉴욕에 사는 아내 주디와 합치기 위해서"라고 털어놨다.
고위 관료인 남편 루빈이 워싱턴에 사는 동안 그의 부인은 뉴욕에 남아 자기 일을 계속했던 까닭이다.
남편의 지위에 상관없이 제 길을 걸으며 주말부부로 지냈던 것이다.
남편이 힘깨나 쓰는 자리에 오르면 부인의 어깨 또한 높아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가만히 있거나 애써 사양해도 다들 알아서 대우해주고 잘 보이려 애쓴다.
그러나 그 '자리'는 어디까지나 남편 것이다.
관행이라는 말에 업혀 자기 것이 아닌 자리의 특권 내지 혜택을 누리는 건 터무니없는 일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