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서쪽으로 500km쯤 떨어진 중부 시가현에 나가하마시가 있다. 인구 5만8000여명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74년 만든 계획 도시다. 평일인데도 시 한복판에 있는 재래상가 구로가베 스퀘어가든(중앙상가) 은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시골의 평범한 작은 도시 상가지만 하루 평균 7000여명이 찾는다고 한다. 1980년대 중반 이 곳은 죽은 거리였다. 도심 외곽에 대형 할인점이 생기면서 지역주민들이 외면했다. 상점은 하나 둘씩 문을 닫았다. 뾰족한 대안을 못찾던 시장 상인들은 나가하마시의 도움을 받아 상가를 운영할 ㈜구로가베를 설립했다. 그때가 1988년. 자본금 1억3000만엔 중 70%는 상인들이 직접 냈다. 수백년 넘게 이어온 재래시장의 전통도 벗어던졌다. 소비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현대시설을 입주시켰다. 대형 할인점에 뺏긴 고객을 되찾기 위해 당시에는 관심이 적던 글라스(공예) 거리도 만들었다. 이를 위해 메이지시대 사용됐던 낡은 은행 건물을 사들여 대대적인 수리를 통해 글라스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문을 닫은 가게도 샀다. 이 가게를 선물용 상점이나 유리 공예 체험관으로 바꿨다. 기존 상인들도 마츠리(전통축제)를 복원시키고 전통 식당을 만들어 방문객에게 볼거리와 먹거리를 제공했다. 회생 작업이 시작된 지 10년. 나가하마 재래시장은 이제 홋카이도 오타루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유리 공예 관광지로 자리를 잡았다. 요즘은 쇼핑과 함께 역사 유적과 전통 문화를 체험하려는 외국인도 많이 찾는다. 관광객은 매년 200만명을 넘는다. 한때 100개를 밑돌던 상점수도 450여개로 늘어났다. 다카하시 마사유키 나가하마 상공회의소 회장은 "재래상가를 역사성과 문화예술성을 살린 종합문화 서비스업으로 바꿔 성공했다"고 자평했다. 재래시장이 살아나려면 정부 지원도 필요하지만 발상의 전환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나가하마 재래시장은 보여주고 있다. 나가하마=최인한 특파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