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영 < 서울시립대 교수.도시사회학 > 우리의 거리가 또다시 출렁였다. 지난 일요일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결승전 거리 응원행사가 다시 한번 광장의 겨울잠을 깨우고 뒤덮었다. 2002년 월드컵 거리 응원에 이어 그것은 21세기 초 한국형 거리축제문화의 한 전형으로 자리잡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파도의 생명력은 누가 미리 준비해서 차려놓는 행사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아무리 뛰어난 공연 전문가들의 퍼포먼스라고 해도 말이다. 그 차이는 관객이 누구냐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축제를 만들어내는 주인공이 누구냐 하는데 있다. 중앙 혹은 지방정부나 기업 등 단체들이 주관하는 각종 거리 축제들이 시민에게 구경거리를 제공해 주는 형식이라면,거리의 응원현장은 각계각층 다양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들어 스스로 자신들 행사의 온전한 주인공이 되는 곳이다. 지자체나 공연 기획사들이 차려주는 거리축제의 각종 행사들이 아무리 많은 사람을 끌어 모은다 해도,거기서 사람들은 '관객'일 뿐이다. 아무리 멋진 작품을 올리고 아무리 인기 있는 대중적 예술가를 등장시킨다 해도 그렇다. 잘하면 관객 일부가 뽑혀 직접 무대 등장인물로 탈바꿈할 수도 있지만,시민들 대다수는 여전히 관객으로 남는다. 그런 축제행사에서는 기획자들이 관객 숫자를 세고 다니며 자신들이 기획한 행사의 성패를 계산하고 그에 따른 결실을 추수한다. 하지만 거리응원은 다르다. 자동차들이 다니던 일상 공간의 규칙을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전복'시킨다. 그리고 사회로부터 그 전복의 힘을 '인정'받는다. 그에 따라 참여자들은 비로소 자신들이 그 공간의 '주인'이 됐음을 생생하게 확인한다. 그것은 도시공간 위에 실현되는 새로운 '권력'의 짜릿한 경험이다. 일상규칙의 전복과 도시공간 위의 권력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거리응원은 전통 민속행사로서의 지역 축제뿐 아니라 한국 현대 도시사의 거리 현장에서 커온 시위 문화의 계보를 따르고 있다. 억눌림에 대한 반발, 저항으로 기존 질서를 전복시키는데 동참하면서 스스로 역학관계 전복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사람들은 1987년 6월 항쟁에서 경험했고 촛불 시위에서도 확인했다. 2002년 월드컵 응원도 그러한 참여적 경험이었다. 한국 축구와 야구가 이전부터 세계 최강의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다면 그렇게 강한 '감동'과 '눈물'은 나타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거리응원이나 촛불시위 같은 대규모의 거리축제 현상은 전복과 자발성의 강력한 축제적 에너지를 가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하나의 지향성만을 허용하는 획일성의 한계를 갖고 있기도 하다. 한국팀을 응원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예를 들면 여러 나라 출신 사람들이 어울려 각자가 지지하는 팀을 응원하고 서로 축하해주는 거리축제는 현재 한국에서, 아직까지는 보기 어렵다. 촛불집회와 시위 현장에서 다른 지향성을 가진 둘 이상의 팀이 만나면 축제는 금세 물리적인,때로는 폭력적이기까지 한 충돌로 이어지는 것과 같다. 거기서는 어떤 조크나 풍자도 허용되지 않는다. 자기 성향과 다른 이들 사이에서 어떤 여유와 느긋함도 교환되지 않는다. 그것은 곧 '신성 모독'으로 지목돼 거대한 집단의 돌팔매질에 깔린 채 압사당할 뿐이다. 시민의 자발적 조직이 아닌 행사의 선물보따리들은, 거리를 문화적으로 치장해 준다는 점에서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여기서 굳이 논하지 않겠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우리의 감동적인 거리축제 자리에서 아직도 기다려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느긋함과 관용의 여유다. 모인 사람들의 숫자 기록을 깸으로써 느끼고 싶은 권력 확대 경험에의 의지로부터 자유로운 한가로움이다. 비로소 다양성의 공존이 인정되는 성숙한 사회의 푸근한 거리축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