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를 뒤흔들고 있는 최초고용계약(CPE·26세 미만 근로자는 취업 후 2년 내 자유 해고) 반대 시위는 자유 해고로 상징되는 미국식 고용 모델에 대한 학생과 노동계의 끈질긴 저항이다. 프랑스 정부는 저성장 고실업으로 대변되는 '유럽병'을 치유하기 위해 뒤늦게 노동시장 개혁에 나섰지만 고용 안정과 복지를 우선하는 기존 모델을 고수하려는 집단의 거센 저항에 부닥쳐 국가적 위기를 맞고 있다. 추가 보수 없이 노동시간을 연장하려는 독일 정부의 고용개혁도 6주째 이어지는 파업의 벽에 부닥쳤다. ◆유럽에 번지는 신자유주의 모델 유럽 각국은 저성장의 늪에서 탈출하기 위해 경직적인 고용시장 개혁에 나서고 있다. 독일은 슈뢰더 총리의 사민당 정권 때인 2003년 이미 '아젠다 2010'이라는 노동시장 개혁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는 연금보험 의료보험 실업보험 등에 대한 기업의 부담을 축소시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독일은 프랑스의 CPE와 유사한 제도도 이미 도입했다. 지난해 말 기민당과 사민당 간 연정 협상 때 6개월 미만의 임시직 노동자에게만 적용하던 해고 보호조항의 예외를 2년 미만의 신규 취업자에게까지 확대한 것이다. 임금 인상 없는 근로시간 연장도 확산되고 있다. 독일 최대 산별노조인 금속노조가 지난해 사용자측의 근로시간 연장안을 받아들인 뒤 지멘스 다임러크라이슬러 등이 근로시간을 연장했다. 프랑스에서도 이번 CPE 반대 시위가 발생하기 전에 이미 지속적인 노동시장 개혁이 진행돼 왔다. 종업원 20인 이하 사업장에 대해 채용한 지 2년 내에 종업원을 자유롭게 해고하는 것이 지난해 9월부터 허용됐다. 4월 시행 예정인 CPE는 이를 20인 초과 사업장으로 확대하고 26세 미만으로 연령 제한을 추가한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지난해 3월 주 35시간 근로제가 사실상 폐지됐고 연장근로 허용 시간도 연 180시간에서 220시간으로 늘어났다. ◆노동계와 기득권층의 저항 기업이 환영하는 이 같은 개혁조치는 취업을 앞둔 학생과 노동계의 완강한 저항에 부닥치고 있다. 프랑스에서 학생들이 주도한 CPE 반대 시위는 노동계와 야당이 가세,빌팽 총리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노동계는 48시간 내에 정부가 이를 철회하지 않을 경우 대규모 파업을 벌이겠다고 경고,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독일 공공부문 노조의 파업 사태도 심상치 않다. 정부측의 노동시간 연장 방침에 항의,6주째 벌이고 있는 이번 파업의 핵심 쟁점은 주간 노동시간이다. 정부측은 추가 보수 지급 없이 노동시간을 주당 38.5시간에서 40시간으로 연장하려 하고 있으나 노조는 결사 반대하고 있다. 특히 독일 최대 노조인 금속노조 등 산별노조도 파업에 가담할 조짐을 보여 장기화할 경우 커다란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회복세 보이는 유럽 경제에 찬물 끼얹을 수도 노동 전문가들은 "영미식 신자유주의를 거부하던 프랑스가 만성적인 고실업과 저성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뒤늦은 처방을 내렸지만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며 "계층 간,세대 간 갈등으로 폭발해 사회 안정을 해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프랑스는 지난 1월 15~24세 청년 실업률이 22%로 유럽에서 가장 높았고 저학력 젊은층은 두 명에 한 명꼴로 일자리를 갖지 못할 정도로 고실업에 시달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 20년간 좌우익 어느 정권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정부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이 조기에 미국식 경쟁 시스템을 도입,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실업률과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라는 것이다. 200여개 독일 은행으로 이뤄진 BDB 은행연합은 독일의 공공부문 파업 사태와 관련,"사태가 장기화하면 5년간의 침체 끝에 간신히 회복하려는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김선태 기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