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는 국가면적이 우리나라 경상도 정도이며 인구는 740만명인 작은 나라다. 하지만 유로머니지가 선정하는 세계 최우수 프라이빗 뱅크 25개 중 1위(UBS)와 4위(CS)를 포함해 총 6개가 스위스 은행들일 정도로 프라이빗 뱅킹(PB)에서는 세계 최강국이라고 할 수 있다. 스위스 PB의 역사는 18세기 말 프랑스 대혁명이 시발점.당시 혁명의 혼란을 피해 프랑스 부유층들이 프랑스와 인접한 스위스 제네바로 그들의 자산을 이동시키면서 스위스가 유럽의 금고로 등장했다. 그러나 대혁명은 이러한 단순한 자금의 이동보다 더 큰 변혁을 가져왔다. 즉 혁명 이전의 모든 자금결제는 당시 금(gold)을 많이 보유한 왕의 보증에 의해 이뤄졌으나(guaranteed by king) 혁명으로 왕이 쫓겨나자 사람들은 거래를 보증할 새로운 수단을 찾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신뢰(trust)였다. 금 즉 돈보다는 신뢰가 자금결제를 최후 보증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는데 당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기관은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스위스의 은행들이었다. 이에 따라 왕정이 이어지던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자산가들의 자금이 스위스로 몰려들게 돼 스위스가 유럽의 금고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스위스 은행들이 프라이빗 뱅킹으로 명성을 쌓은 데에는 특유의 비밀주의도 큰 역할을 했다. 여기에 재미 있는 역사적 에피소드가 있다. 신교도에게 신앙의 자유를 허용한 낭트칙령(Edit de Nantes)을 1685년 프랑스의 루이14세가 철회하면서 신교도들이 종교박해를 피해 제네바로 이주해 은행업에 종사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주요 대출 고객이 바로 프랑스 국왕이었다. 프랑스 국왕은 자기가 추방한 신교도들에게 돈을 꿔 쓴다는 창피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절대 비밀유지를 요구했고 이것이 스위스은행에 비밀주의가 정립된 계기였다. 이후 스위스은행의 비밀주의는 법으로 규정되기 시작했고,1934년 스위스 정부는 연방법으로 은행비밀규정 위반자를 형벌로 처벌하기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 외에도 스위스가 세계의 금고역할을 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스위스는 중립국의 위치를 지켜오면서 1848년 연방국가가 탄생한 이래 단 한 번도 전쟁을 겪지 않은 유럽의 유일한 국가다. 또한 1994년에서 2004년까지 연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인플레가 매우 낮고,스위스프랑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유지했다. 자국 언어가 없고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가 공용어로 쓰이고 있는 것도 전 세계 각국의 부자들과 상담을 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이러한 역사 정치 경제 문화적 환경이 어우러져 스위스는 현재 세계의 금고로 자리매김했으며,오늘도 전 세계에서 부호들이 재산을 맡기기 위해 제네바와 취리히 공항에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