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선경 < 시인 > 한 사흘 꽃샘추위를 지나고 나니 정말 봄이다. 내가 있는 교정의 꽃나무들도 물이 올라 탱탱하다. 곧 산은 연록의 새순들을 밀어 올리고 새잎들이 어린아이의 미소같이 벙글거릴 것이다. 진해의 벚꽃들은 화안한 꽃대궐의 잔치를 펼칠 것이고 사람들은 무언가 희망에 꽃처럼 부풀고 설렐 것이다. 나는 이 잔치마당 같은 봄이 좋다. 새해,새봄,새로운 계획,새로운 아이들,새 희망,새롭다라는 말과 생각이 꽃처럼 활짝 웃는다. 입춘(立春)이 봄의 들머리라면 춘분(春分)은 봄의 한 가운데이다. 그러면 우수,경칩을 지나고 춘분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우리는 봄의 한 가장자리에 들어있는 셈이다. 어찌 설레지 않고 부풀지 않겠는가. 버들개지같이 물이 오르고 개나리같이 웃음이 돋는다. 온 산이 꽃이고 온 세상이 꽃이다. 말 그대로 내 눈앞에도 꽃이고 내 가슴에도 꽃이다. 어찌 마음의 여린 살이 돋지 않고 가슴의 여린 순이 돋지 않겠는가. 이런 꽃은 색상과 모양이 가지각색이고 다양하지만 이는 종자식물의 번식기관을 이르는 말이다. 식물의 생식기관인 셈이지만 우리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희망과 환희의 열정 같은 것이 있다. 이 다양한 꽃 중에서도 만개한 봄을 알리는 것으로는 단연 벚꽃이 으뜸이다. 장미목 장미과의 이 벚꽃은 그 만개한 모습도 아름답지만 지는 모습도 일품이어서 이 시기가 되면 꽃나들이를 가는 행락객이 수십만명에 이른다. 이렇듯 아름다운 모습을 이형기 시인은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지금은 가야할 때//무성한 녹음과 그리고/머지않아 열매 맺는/가을을 향하여/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라고 노래했고, 조지훈 시인은 '꽃이 지기로서니/바람을 탓하랴//…/촛불을 꺼야하리/꽃이 지는데//꽃 지는 그림자/뜰에 어리어//하이얀 미닫이가/우련 붉어라'라고 노래했다. 겨울의 긴 잠에서 깨어났다고 사람들도 이제 두터운 외투를 벗고 새봄을 맞이하라고 그 벚꽃이 지금 벙글고 있다. 작년 이맘 때 기록을 보면 서귀포는 3월21일에 벚꽃이 개화했고 진해는 3월27일,서울은 4월5일에 개화했단다. 천릿길을 대략 시속 1.6km로 북진한 셈이다. 느린 듯하지만 느리지 않고 빠른 듯하지만 그렇게 빠르지도 않다. 천지의 운행에 맞추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간 것이 천릿길이다. 천리(天理)는 때가 있어 이렇듯 때가 되면 우리 곁으로 다가와 우주(宇宙)의 운행을 알려준다. 얼마나 신뢰할 수 있고 얼마나 정확하며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래서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꽃에다 비유하고 가장 아름다운 때를 꽃에다 견준다. 벚꽃의 개화 시기가 올해는 작년보다 조금 늦어 서귀포는 3월26일쯤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한 차례의 꽃 소식이 느린 듯 조금 빠른 듯 북상해 우리 한반도를 화안하게 밝힐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모든 걸음들이 이 꽃 소식이 되고 이 꽃 소식같이 걸음마다 마음이 열리고 가슴이 열렸으면 한다. 어제까지 등을 돌렸던 사람들이 서로 꽃을 보듯 하고 꽃을 만난 것처럼 다정한 눈빛이 됐으면 한다. 사람살이의 길이 어찌 천리(天理)와 꼭 같을 수 있겠는가마는 그래도 우리 사람살이들도 이와 같이 됐으면 한다. 내 믿었던 믿음이 꽃 소식같이 오고,내 열심히 씨 뿌린 만큼 새순이 돋고,내 물 주고 가꾼 만큼 열매를 맺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봄날에 새봄의 기쁜 꽃소식도 아닌 잡다한 인위(人爲)의 선과 금들을 서로 그어놓고 이것을 어제는 이렇게 읽었다 오늘은 저렇게 해석하고,내일은 다시 새롭게 다른 이름을 갖다 붙인다. 실상 하는 일마다 제 기분에 못 이겨 너무 빠르거나 너무 미룬다. 안타깝지만 그래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자연이 스스로 때를 알아 봄이 오고 꽃이 피고 하듯이 우리 사람살이도 자연의 법도와 질서처럼 정연하고 규칙적이었으면 하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