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일 <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 > 최근에 스크린쿼터 폐지 논쟁이 영화산업의 해묵은 과제들에 대한 갑론을박을 촉발시켰다. 그동안 우리 영화가 예술적 측면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었지만 아직까지 영화 시장을 산업적,경제적 측면에서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 우선 제작비가 수십 배인 미국 영화가 국산영화와 동일한 입장료를 받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주장이 일부에서 제기됐다. 수십 배의 제작비를 들였으니 입장료도 7000원이 아니라 수만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그 특성상 막대한 제작비가 소요되는 반면 상영에 소요되는 비용,즉 한계비용은 매우 적다. 입장료는 한계비용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제작비의 크기와 관계없이 모든 영화의 입장료는 7000원이다. 하지만 미국 영화의 제작비는 국산영화의 수십 배이기 때문에 관객 수도 수십 배가 돼야 손익분기점을 넘을 수 있다. 제작비가 수십 배라고 해서 영화의 질이 월등하다는 보장도 없다. 적은 제작비를 들여 만든 영화들이 동일한 입장료를 받고 경쟁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정 시점에서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한 영화의 제작자가 입장료를 대폭 올리거나,이미 상당한 이윤을 확보한 제작자가 시장을 독식하기 위해 입장료를 덤핑(dumping)한다면,이는 명백한 불공정행위일 것이다. 우리 영화시장에서 이러한 일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 직배사들이 그들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서 흥행성 없는 영화를 상영하게 하고,이 때문에 국산영화가 조기 종영된다는 주장도 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가 흥행이 되지 않더라도 다음 작품의 흥행성이 높을 경우 극장주는 할리우드 영화를 상영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이러한 주장은 과거에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사실이 아니다. 지난 3년간 배급시장 점유율 상위 3사는 모두 국내 배급사였다. 직배사가 국산영화를,국내 배급사가 외국영화를 배급하는 경우도 흔하다. 국산 영화의 흥행력이 배급시장 구조를 변화시킨 것이다. 직배사들의 우월한 지위는 그들이 배급하는 영화의 흥행력에 의해 뒷받침되는데,국산영화의 흥행성이 커지면서 이들의 교섭력(bargaining power)은 약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부율-극장주와 제작자 간 수익배분율-조정도 사실 큰 문제가 아니다. 현재 국산영화의 경우에는 입장료의 50%를, 외국영화에 대해서는 40%를 극장주가 가져간다. 이것이 불공정하다는 게 제작자들의 주장이다. 극장주들은 외국영화의 경우에도 50%를 가져가겠다고 맞선다. 어느 쪽 주장이 옳은가? 둘 다 옳지 않다. 왜냐하면 부율은 작품에 따라,극장에 따라 변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흥행에 자신이 있을 경우 제작자 몫은 60%,혹은 70%도 될 수 있다. 반면 서울 중심부에 위치한 극장의 소유주는 제작자의 몫을 50% 이하로 낮출 수 있다. 부율은 극장주와 제작자의 자발적인 교섭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 할인점이나 백화점의 예를 들면 입점하는 업체와 건물주의 수익배분율은 품목에 따라,브랜드에 따라,그리고 건물의 입지에 따라 상이하게 결정되는 것이 관행이다. 끝으로 특정 영화의 흥행 성공은 이해당사자들에게 커다란 경제적 이득을 주겠지만,이로 인해 우리 경제에 엄청난 파급효과가 발생한다는 주장도 과장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평균적으로 1년에 한 편 내지 두 편의 영화를 관람하기 때문에 '왕의 남자'의 흥행 성공이 앞으로 개봉될 영화의 흥행 실패로 연결될 가능성도 무시하지 못한다. 영화산업도 산업인 이상 노사문제,시장의 독과점,불공정 거래,요금 책정,과다한 규제 등 다양한 산업정책적 이슈들이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은 스크린쿼터 폐지와 무관하게 산업정책,공정거래 정책,그리고 소비자보호 정책의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영화산업의 특성과 시장구조를 정확하게 분석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