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인플루엔자(AI) 치료제로 유명한 다국적 제약사 스위스 로슈가 경기 안성의 의약품공장을 내년 상반기까지 폐쇄키로 했다고 한다. 노바티스를 비롯 와이어스,일라이 릴리,GSK에 이어 로슈까지 한국 공장을 철수키로 하는 등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한국이탈 현상이 줄을 잇고 있다. 물론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한국 공장을 포기하게 된 데는 글로벌 생산체제의 조정 등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번 로슈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아시아지역 제조시설 가운데 유독 한국 공장만을 집중적으로 정리하고 있는 반면 중국 등 다른 지역의 공장은 오히려 증설(增設)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한국은 더 이상 글로벌 생산기지로서의 매력이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는 셈이다. 사실 정부는 그동안 틈만 나면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강조해 왔지만 현실을 보면 아직도 영 딴판이다. 한국의 투자환경에 대해 외국인들이 불만스럽게 느끼는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좀처럼 개선(改善)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수도권 공장 신ㆍ증설 억제 등 정부의 규제는 여전히 많고 인건비와 땅값은 계속 오르고 있는 데다 자녀교육과 의료서비스 등 생활여건 또한 경쟁국에 비해 열악한 형편이다. 뿐만 아니라 노사관계도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실제로 한국로슈의 경우 2002년에 95일간의 장기파업 등 노사갈등을 겪은 후부터 안성공장의 생산량을 계속해서 줄여왔는가 하면 노바티스의 경우 무려 4년간에 걸친 파업에 시달리다 결국 공장을 매각하고 말았다. 사정이 이러하니 외국기업이 새로 들어오는 것은 고사하고 기존 진출업체들마저 떠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아직도 그 심각성을 인식하기 보다는 오히려 기업의욕을 꺾는 조치들을 내놓고 있으니 여간 걱정스러운 일이 아니다. 우리의 성장동력을 강화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외국기업을 보다 많이 유치해야 하는 것은 물론 이미 들어와 있는 다국적 기업들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부 당국은 이제부터라도 외국 기업들이 매력을 느낄 정도로 좋은 투자 환경을 만드는데 모든 노력을 쏟아부어야 할 것이다. 투자환경의 개선 없이 외국기업들의 이탈(離脫)을 억지로 막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