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가가치 창출의 근원인 제조업을 혁신해야 2015년에 '산업 4강'으로 진입할 수 있다.' 국내 제조업을 고부가가치형 선진형 구조로 전환하기 위한 한국형 제조혁신의 전략 등을 논의하기 위한 전문가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제조업이 살아야 한국이 산다"며 "정부와 기업,학계가 머리를 모아 제조업의 혁신에 매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경제신문이 지난 2월28일 서울 팔래스호텔에서 안현실 논설위원의 사회로 개최한 좌담회에는 김종갑 산업자원부 차관,최병규 KAIST(한국과학기술원) 산업공학과 교수,문승주 현대자동차 상무,최헌종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선임본부장,이창호 디엔씨존 대표,주인식 한국파워트레인 사장,이재윤 두산인프라코어 전무,박화영 한국기계연구원장이 참석했다. 내용을 요약한다. 사회=안현실 논설위원 -------------------------------------------------------------- [ 참석자 ] 김종갑 산업자원부 차관, 박화영 한국기계연구원장 최헌종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선임본부장 문승주 현대자동차 상무 이재윤 두산인프라코어 전무 주인식 한국파워트레인 사장 최병규 KAIST(한국과학기술원) 산업공학과 교수 이창호 디엔씨존 대표 -사회=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국형 제조혁신(i-매뉴팩처링)의 개념은 무엇인가. ◆김종갑 차관=관광산업도 중요하고 물류,금융도 발전시켜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탈리아 같은 관광산업을 할 수 없고 싱가포르보다 물류를 잘할 수 없다. 영국과 같은 수준의 금융도 현재로선 어렵다. 제조업 혁신을 게을리해선 안 되는 이유다. 중국과 인도 등 후진국들의 추격 때문에 한국이 제조업 강국으로 안착할 수 있는 기회는 앞으로 5∼10년 정도다. 세계적인 경쟁의 추세는 국가 간 경쟁에서 공급망 간의 경쟁으로 바뀌었다. 한국은 1990년 이후부터 제조업의 외화가득률이 떨어지고 있다. 잘 나간다는 전자 IT산업이 가장 떨어진다. 그래서 추진하는 게 i-매뉴팩처링이다. 대·중소기업 간 또는 중소기업 간의 협업을 촉진해 공급망 전체에 경쟁력을 높이자는 취지다. ◆최헌종 본부장=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한국 제조업은 많이 개편됐다. 대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하면서 분사를 통해 협력업체가 많이 만들어졌는데 처음엔 다들 가격면에서나 품질면에서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니 좋은 인력을 확보하는 게 어렵게 됐고 결과적으로 품질,납기,가격 등의 면에서 경쟁력이 떨어졌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조업에 우리의 강점인 IT를 접목했던 게 'e-매뉴팩처링(제조업과 IT의 접목)'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기업 간 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함께 기술 혁신(innovation)을 이루자는 게 i-매뉴팩처링의 핵심 개념이다. ◆주인식 사장=자동차 부품 사업을 한 지 30년이나 됐다. 과거에는 일본 자동차 부품업체에 기술을 구걸하러 다녔다. 그때부터 일본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게 꿈이었다. 기술은 관리기술과 고유기술로 나뉘고 고유기술은 또 제품제조기술과 연구개발기술로 구분된다. 제조기술은 어느 정도 일본을 따라왔다. 이제는 연구개발 능력이 중요하다. 관리기술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 고유기술이 뛰어난 일본도 이길 수 있다. e-매뉴팩처링 같은 사업이 필요한 이유다. -사회=주요 원청업체인 현대차에 어떤 걸 원하나. ◆주 사장=현대차에 국내 부품업체들을 보호해달라고 하지만 한국 부품업체들은 보호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연구개발에 노력해야 한다. 과거엔 국내 기업을 보호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현대차는 이제 글로벌 기업이고 제품구매도 글로벌하게 한다. 현대차가 GM과 도요타에 이기려면 협력업체들 스스로 기술력을 높여야 한다. ◆문승주 전무=현대자동차가 이 정도 성장한 건 협력업체들이 잘 도와줬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경쟁력 있는 부품 회사들도 많이 생겨났다. 이제는 현장 기술만으론 부족하다. 디지털 기술이 중요하다. 공급망 내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시스템화해야 한다. 물류관리시스템도 효율화해야 한다. 현대차는 외국에서부터 실험을 시작했다. 미국 앨라배마 공장과 슬로바키아 기아차 공장은 이런 시스템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이를 성공시켜 국내에 확산시킬 계획이다. ◆이창호 대표=9개 금형 업체가 모여 만든 '몰드존'은 중소기업 간의 협력을 통한 i-매뉴팩처링의 시범 사례다. 우리 회사(디엔씨존)는 설계와 마케팅 품질관리를 맡고 나머지 업체가 공정을 담당했다. 각 기업의 기술 인력 등을 재배치해 가상의 회사를 만든 것이다. 공급자 중심의 사고에서 고객중심으로 바꾸기 위해 소프트웨어가 필요했다. 우리는 이런 정보시스템이 부족했는데 i-매뉴팩처링으로 많이 발전시켰다. ◆최병규 교수=제조업 혁신을 위해 대학교육부터 혁신해야 한다. 우리 전통 제조업이 산업공동화되는 것처럼 제조혁신을 담당할 인력도 심각한 공동화 위기에 놓여 있다. 학생들은 전공 이름에 '생산'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교수들도 '제조'라는 단어가 박힌 명함으로는 연구비 지원도 못 받는다. 산업체에서 경력을 쌓고 은퇴하신 분들을 초빙교수로 많이 모셨으면 한다. ◆박화영 원장=서비스업이 제조업을 대체할 수 있느냐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서비스업은 이미 부가가치가 있는 물건을 옮기거나 판매하고,금융을 조달하고 인간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다. 영국은 과거 제조업 강국이었는데 지금은 다 버리고 금융 관광업에 집중했다. 결국 쇠약한 제국이 됐다. 반대로 일본은 80년대 중반 플라자합의와 90년대 버블붕괴에 이은 장기불황 등 두 번의 위기를 겪었다. 두 가지 위기를 버텨낼 수 있었던 건 제조업이 워낙 튼튼했기 때문이다. 한국기계연구원은 설계엔지니어 지원센터를 세워 연간 600여개의 중소기업에 기술 지원을 해준다. 가장 안타까운 건 업체들이 설계 과정보다는 결과만 달라고 요구했다. 그런 회사일수록 제품개발을 못한다. 엔지니어 수준이 떨어져서.통신 디스플레이 등 주력산업의 기술자립도가 약하다. 주력산업에 대한 기술자립화 문제는 정부차원에서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재윤 전무=제조업이 국부를 창출한다는 데에 동의한다. 두산인프라코어는 공작기계 업체다. 기존에 우리 회사의 경쟁력은 일본이나 독일 업체가 만든 제품을 보고 비슷한 제품을 얼마나 빨리 만드느냐에 달려 있었다. 향후 5년 내 같은 시기에 같은 성능의 제품을 만들수 있어야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연간 7600대의 기계를 만들고 있는데 그 중 40%만 우리가 직접 생산한다. 나머지는 협력업체들의 몫이다. 대기업은 조립과 마케팅만 한다. 따라서 협력업체들이 대기업과 대등한 능력을 갖고 가줘야 제조업을 혁신할 수 있다. ◆김 차관=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체결됐지만 미국 내 주(state)간의 거래가 미국-캐나다 간 거래의 10배 수준에 이른다. 미국과 캐나다는 땅도 붙어있고 문화도 비슷하다. 화폐단위만 틀릴 뿐이다. 이는 국경이 여전히 굉장한 장벽임을 뜻한다. 국경 없는 무한경쟁이라는 얘기는 아직 현실과 멀다. 그렇다고 국수주의로 흐르자는 게 아니라 경쟁력을 위해서 우리나라 기업들끼리 협력하자는 것이다. 산·산협력뿐 아니라 산·학협력도 중요하다. 기업이 국내 총 연구개발(R&D) 비용의 75%를 쓰고 있는데 이 중 대학에 준 자금이 1.7%,출연연구기관에 준 자금이 0.8%다.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양측의 노력이 필요하다. 정리=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