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이 필리핀 수빅만에 연산 60만DWT(적재중량)급 조선소를 건설키로 함에 따라 국내 조선업체들의 해외 조선소 건설 계획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중공업은 이미 중국 저장성 닝보에 블록공장(선체 조립용 철구조물)을 건설해 운영하고 있으며 대우조선해양도 중국 산둥성 옌타이에 블록공장을 건설키로 했다. 현지 사정상 당분간 블록공장으로만 운영한다는 방침이나 장기적으로는 언제든지 조선소로 전환한다는 전략이다. 국내 조선업체들이 해외에 조선소를 짓기로 한 것은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高)임금 부담에다 인력 및 부지 부족,노사문제 등이 갈수록 가중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탈출구로 해외 조선소를 선택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에 대해 국내 조선업계가 생존을 위해 글로벌 경영을 확대하고 있는 점은 이해되나 기술 유출 및 국내 고용 훼손 등 적지 않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해외 탈출의 신호탄? 국내 조선업계의 해외 조선소 건설은 벌써부터 예상돼 왔다. 삼성중공업은 1997년 중국 저장성 닝보에 블록공장(20만평 규모)을 건설해 운영하고 있다. 현재 연간 12만t의 블록을 생산하고 있으나 20만t으로 생산 규모를 늘린다는 계획이다. 대우조선해양 역시 2007년까지 1억달러를 투자해 중국 산둥성 옌타이에 30만평 규모의 블록공장을 건설키로 했다. 초기에 연간 5만t을 생산하다가 중장기적으로 30만t의 블록 생산체제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다만 대우와 삼성은 현지 조선소 건설시 경영권 확보가 쉽지 않아 당장은 블록공장으로 만족한다는 전략이다. 중국이 자국 내 기간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해외 업체에 경영권을 주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한 탓이다. 따라서 대우와 삼성은 장기적으로 경영권만 확보되면 언제든지 블록공장을 조선소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 한진중공업은 이런 점에서 필리핀을 선택,대우와 삼성보다 한발 앞서 해외 조선소를 건설할 수 있게 됐다. ◆왜 나가는가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의 경우 원가절감을 위해 중국에 블록공장을 건설했거나 건설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갈수록 인건비가 높아져 차라리 인건비가 싼 중국에서 블록을 생산해 들여와도 채산성이 맞는다는 설명이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중국산 블록을 국내로 들여오는 물류비를 감안하더라도 중국 현지 블록공장을 두는 게 훨씬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국내 노사문제도 해외 탈출을 부채질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예컨대 조선사 노조들은 올해 산별노조 전환을 투쟁 이슈로 삼고 있다. 산별노조로 전환될 경우 국내 경영여건은 더욱 악화될 게 자명하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대우조선 관계자는 "특히 앞으로 노조가 비정규직 문제 등을 적극 들고 나올 태세여서 노조 문제가 없는 해외 조선소 건설을 갈수록 선호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진중공업은 여기에 더해 국내 조선소 부지난이 필리핀 조선소 건설을 추진하게 된 배경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진중공업의 경우 영도조선소 등 국내에서 운영하고 있는 조선소 부지가 연산 100만DWT 규모지만 컨테이너선,LNG선,VLCC를 건조하는 데는 턱 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조선업체들이 줄줄이 해외로 진출할 경우 조선기술 유출이나 국내 고용창출 능력의 저하 등을 우려하고 있다. 조선업종은 1개 조선소가 수만명의 인력을 고용,고용창출 능력이 어느 업종보다 크기 때문이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