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춘희 < 시인 > 인간의 몸은 작은 우주와 같다. 사물의 모든 기(氣)가 이 우주에 모여 있기에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들과 몸 전체로 교감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생의 어느 길모퉁이에서 운수 나쁘게 질병이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과 마주칠 때가 있다. 뒷걸음질치며 도망가고 싶지만 상황은 늘 내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그 손님이 감기몸살이거나 위궤양,아니면 우리가 주변에서 가볍게 만나거나 스쳐가는 사소한 병 정도라면 또 그리 나쁘지 않다. 문제는 원인도 알 수 없고 난생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이름의 난치질환이거나 암일 때다. 그것은 공포 그 자체다. 평온하고 안락한 일상에서 갑자기 캄캄한 벼랑 끝으로 등 떠밀려 떨어질 때의 절망감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바닥에 닿아본 사람만이 바닥을 박차고 튀어오를 수 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은 맞지만 지금의 내게는 반드시 그렇지 않다. 생의 축복처럼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중환자가 되어 무균실에 입원하게 되었을 때 사형선고를 받은 기분이었다. 의사의 실수로 빚어진 오진이거나 병원의 착각이라고 믿고 싶었다. 처음에는 '왜 하필 나일까?' 그렇게 나쁘게 산 것 같지 않은데 싶어 보이지 않는 신을 원망하고 건강하게 활보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부럽다 못해 공연히 미워졌다. 스스로를 옥죄고 세상에 대한 소외감으로 자신을 괴롭혔다. 자연히 몸도 지쳐가고 숨쉬기조차 버거운 날들만 흘러갔다. 그런 와중에도 계절은 정직해서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해가 바뀐 줄도 모르고 무심코 창 밖을 보았을 때 세상은 온통 얼었던 땅을 뚫고 나온 생명력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순간 우울하고 무거웠던 가슴 한 구석을 찢고 울컥,무엇인가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자연이 전해주는 감동이었다. 어둠 속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출구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부정적이던 모든 생각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마음을 바꾸자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는 자신감으로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우리는 자신의 가족과 스스로의 삶만은 행복하고 충만하기를 바란다. 고통과 불행은 나와는 무관하게 비켜가기를 바라면서 전쟁이나 참사,기아나 질병은 다른 나라의 일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도 건강할 때는 앞만 쳐다보고 가느라 늘 시간이 모자라고 벅찼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사고할 수 있는 능력과 사랑할 수 있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예수님께서는 일찍이 말씀하셨고 우리에게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하기를 지금도 간절히 바라고 계신다. 오래도록 병을 친구 삼아 살아오면서 느끼고 배운 것이 있다면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고 사랑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나와 내 가족이 건강하다면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작은 도움의 손길이라도 내밀어야 하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먼저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과 주변을 살펴보고 돌아봐야만 우리의 삶이 더 따스하고 풍성해지리라 믿는다. 저 푸르고 싱싱한 생명의 초록나무에 용암보다 더 뜨겁고 붉은 사랑의 꽃을 피우는 건 우리의 몫이다. 무공해 식품으로 우리 가족의 건강만 챙길 것이 아니라 이웃의 발밑과 아픈 곳도 만져줄 때 사회의 어두운 곳도 환해지고 밝아져서 건강한 생활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견딜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세상에서 "우리를 견디게 하는 것은 예술이다"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을 바꿔 말하고 싶다. "우리를 견디게 하는 것은 사랑이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