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시야(視野) 좁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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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주 < 서강대 명예교수 >
"세상을 좁게 보면 강렬해진다."
작고하기 전 필자가 제정구 의원을 첫 대면한 자리에서 과거 격렬한 도시빈민구제활동의 힘이 어디서 나왔나를 궁금해 하자 그의 답변이 그러했다. 나이가 들며 세상을 넓게 보게 되니까 젊은 시절 활동의 잘잘못이 보이더라고 말을 이었다. 재야 출신 인사 중 드물게 겸손ㆍ솔직ㆍ담백한 분으로 기억된다.
유권자들이 대표자를 선출해 간접적으로 국정에 반영하는 의회민주주의제도가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 다양한 과제를 다루기에 반드시 최선이 아닐 수 있다.
일부 국민에게 민감한 이슈를 둔감하게 다뤄 뜨악하게 느껴지게도 하고,시급한 문제를 지연시켜 분통 터지게 하기도 한다.
때로는 소수의 과도한 의사진행 방해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무지한 다수가 수적 우세로 소수의 권익을 묵살한다.
비정부조직(NGO)들의 존재 이유가 그것이다.
지난날 군부정권 시절에는 NGO들의 활동을 억제하면서 국정안정과 경제발전이 추진됐다.
그 연장선에서 1인당 소득 1만달러의 경제가 이룩됐고,억압 받던 재야 인사들이 집권에 성공한 이른바 '민주화'시대가 도래했다.
음지에서 양지로 나온 다양한 NGO들이 정권 주변에 도열해 꽃피우고 있다.
간접민주주의 보완책으로 NGO활동을 중요시하는 현 정부가 제공하는 재정지원과 인재등용 기회가 그들에게 기름진 토양이 되고 있다.
그 결과 일상적 일과(직장근무 성실납세 가족부양 등)에 분주해 어느 조직에도 소속하지 아니한 절대다수 국민의 권익은 비 온 뒤 대나무 자라듯 급성장한 NGO의 숲에 가려 그늘져 시들게 됐다.
지난날 권위주의시대 한밤중에는 각계 재야단체들이 민주화의 새벽을 알리는 귀한 존재였다면,오늘날 민주화 시대에는 특정 이해관계로 얽히고설킨 조직들(연대 단체 동우회 등)이 국민의 이익을 훼손하는 성가신 존재로 전락했다.
주요 국책사업(고속철 방폐장 미군기지이전 등)마다 이들의 방해 저지 공작 때문에 치르는 국고 손실이 건건마다 조 단위로 불어난다. 조세 납부에 실질적으로 도움된 바 없는 NGO회원들 때문에 말이다.
하기야 NGO가 무슨 죄인가? 좁은 시야가 그들의 생명인 걸 어찌하랴.그들의 의견은 참고하되 좌지우지되지 말아야 할 정부의 우유부단함에 책임이 귀착된다.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앞두고 반대에 앞장선 두 단체가 주목된다.
농민단체와 영화인단체들이다.
농촌에 살지도 않고 농사일도 모르는 시위전문가들이 주도하는 농민 시위는 그렇다 치자.스크린쿼터 축소에 반대하는 영화인들은 철면피하다.
관객 1000만명을 돌파한 '왕의 남자' 등 대박 영화가 줄이어 대호황을 누리며 국산영화 스크린 점유율이 압도적인데 무슨 잠꼬대인가? 입장을 바꿔 '한류'가 잘나가고 있는 동남아 국가들이 한국영화 수입 홍수에 대항해 스크린쿼터를 도입 한다고 가정해 보라.그들은 영화 출연료,CF모델료 등 고소득을 누리는 소득 양극화의 표상이며 외제 명품 자동차,의상,화장품 등 자유무역의 최대수혜자가 아니던가? 광화문 시위에 얼굴을 값싸게 팔지 말고 불우이웃 돕기 운동에 비싸게 팔기 바란다.
제정구 의원은 빈민을 위해 시야를 좁히며 제 주머니를 털었다. 현재 이익집단들은 제 주머니를 불리기 위해 눈가리개 시늉하고 국민에게 동정을 구걸하고 있다.
청와대가 NGO 인사들에게 포위ㆍ점령돼 대통령의 눈이 가려진 듯하더니 지난주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대통령이 모처럼 바른말 했다.
경제팀에 FTA 성사를 당부하고,집단이기주의를 경계했다.
지금은 경제 살리기 실적이 부실해서 국민의 대정부 평가가 낮지만 FTA가 성사되면 스코어 보드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늘 그러하듯이 안되면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안되면 그만'식으로 털어버릴 생각을 아예 버려야 한다.
멀리,넓게 보아야 경제가 산다.